수많은 지원자가 경쟁하는 아나운서.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방송국에 취직하기 위해 가장 먼저 준비하는 것이 바로 이목을 끌 만한 자기소개이다.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의 매력이나 살아온 환경, 이력을 어필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 나는 우연히 찾아온 축복과도 같은 사건으로 그 수고스러움에서 조금은 자유로웠다. 나의 자기소개는 “2008년 전 국민을 울린 영화 워낭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제 친 조부모님이십니다”로 시작한다. 그렇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나의 친 조부모님이다.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농부와 소의 우정을 담아 한국 독립영화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한 이 영화는 우리 가족에게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면 불운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한 마디로 ‘양날의 검’과 같은 사건이었다.
이 영화로 인해 우리 가족은 일약 스타 가족이 되었다. 스타가 된 가족들은 이 영화의 성공을 생계 수단에 활용하고 있고, 손자인 나 역시도 이 소재를 주구장창 활용하고 있으니 가히 보물 상자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이면에 우리 가족은 많은 상처를 받기도 하였다. 영화가 개봉한 직후 늙은 노부부를 모시지 않는 것으로 묘사돼 한동안 불효자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또, 영화의 성공으로 인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일상생활에 방해가 되었을 뿐 아니라 악의를 가진 사람으로 인해 가족끼리 번갈아가며 불침번을 서기도 하였다.
전문방송인이 된 요즘, 2008년을 자주 생각한다. 자극적인 소재가 난무하고, 이슈를 위한 방송이 주류를 이루면서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 옆집 이웃의 소식은 뒷전이 되어 버렸다. 이 영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선정적인 소재가 난무하는 언론 속에서 워낭(소 목에 메다는 방울) 소리처럼 고요하고 청아한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대중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은 아닐까? 우리 곁, 내 옆의 이웃의 삶과 일상을 대변하는 따뜻한 방송이 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방송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하였듯 ‘양날의 검’과 같다. 카메라에 담는 한 폭의 영상, 한 줄의 대사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누군가에게는 절망이 될 수 있기에 진지하고 신중하여야 한다. 방송을 쉽게 하고 접하는 세상 그리고 스마트폰이 보급화된 세상이 되면서 정보의 제공자(방송사, 언론인, SNS 게시자)는 이슈를 위해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쉽게 전달하며, 정보를 접하는 자 역시‘신상 털기’, ‘마녀 사냥’ 등의 부정적인 행위를 당연시 여기고 있다. 선량한 시민이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철저한 정보 검증, 진중한 방송인의 자세가 필요한 요즘이다.
방송인의 자세에 대해 생각하는 요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슈를 전달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아닌, 소시민의 삶과 일상을 대변하는 청아한 소리의 아나운서이자 기자가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최형진 아나운서
마포구청 방송국 마포i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