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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음] 굴을 빠져나와

굴을 빠져나와

조원규 
비틀거리며
햇빛 속으로 걸어 나오는 이
타인이었던 당신을
어쩔 수 없이
어쩔 줄 모르고
내가 껴안으며 울었을 때
당신이 엉엉 울었을 때
우리는 생존자들
우리라는 생존자들,
대체 어디로부터 우리가
벗어났는지
아직도 말하지 못하지만
아무 말도 못하게
광년(光年)처럼 따로 살아놓고도
빠져나온 구멍은 같아서
말갛게 서로를
한 번 바라본다는 것이다



내 삶이 이상하다

내 삶이 이상하다.
몇 개의 글쓰기 수업을 통해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과 만나고, 근소한 급료를 번다. 글을 통해 만난다는 것은, 아마도 비슷한 신음(呻吟)으로 교신할 수 있음을 뜻하리라. 어찌 다만 신음뿐일까, 삶의 전투를 이겨내고 마치 용의 피를 뒤집어쓴 듯 포만한 피로일 수도, 혹은 푸른 꽃이 핀 홀가분한 풍경의 감회일 수도 있다. 그렇게 온갖 것일 수 있겠으나, 내게는 어쩐지 시대의 주조음이 불안과 분노에 찬 신음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러나 삶은 참 이상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공명하는 시간의 결을 만날 때, 삶은 문득 신비롭고, 그럴 때는 누구든 사소하게 다른 시간 속으로 태어난다.
이 세상, 깨어있는 시간에 누군들 두서없이 제 마음을 주워섬기지 않는가. 그런데 또 누가 제 마음을 온전히 알릴 수가 있었을까. 뜻이 반대로 어긋나는 이 두 문장들이 혹 당신께 모두 납득이 된다면, 저 둘 사이에서 어떤 실낱같은 선명함을 얻기 위해 숨을 고르는 삶의 이상함을 이해하실 것이다.
불안한 시대의 영상들. 몇 년 사이 불길에 타 사람이 죽고 물에 가라앉아 사람이 죽고 또 누군가는 생활의 절망 끝에 절벽처럼 망루에 서거나 또 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제도 속 구멍처럼 좁은 방에서 시들어갈 때, 망연한 슬픔과 분노를 풀어놓고 다음의 삶을 기약하며 조망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늘 코앞의 삶이 벅찼다. 해결이나 애도조차 여의치 않을 때, 어떤 말과 글도 이러저러하다며 장막을 여며 닫지 못한 채였으니.
그리하여 마음이 잡히지 않을 때 사람은 무엇을 하면 되었을까? 상처 입은 세상에서 상처 입은 개인으로 마음을 다 놓칠 것 같을 때, 무엇을 하면 좋았을까?
다만 한 마디를 토로하는 일, 대단치 않은 말일 텐데도 귀를 열어 들어주는 ‘우리’를 상상하며 작은 이야기를 시작하는 일, 어려운 이것 다음의, 너머의 삶이 믿기기 시작할 때까지 신음하고 내가 아는 신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일, 이런 일들에 몹시 간절해진 내 삶이 참 이상하다. 
그 하나에 온통 매달린 것 같은 이런 삶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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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규 시인
1985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밤의 바다를 건너>, <난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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