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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송이야기] 마을변호사로 맡은 첫 사건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중 “동네변호사 조들호”라는 드라마가 있다. 정의롭고 뚝심이 있으며 사회적 약자를 먼저 생각하는 동네변호사에 관한 드라마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이다같이 시원한 쾌감을 갖게 하였는데 그 드라마는 현재 시행하고 있는 ‘마을변호사제도’에서 그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덧 마을변호사 제도가 시행된 지 약 4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 마을변호사제도가 시행되었던 시기, 전국의 무변촌에 마을변호사를 두어 주민들에게 법률적인 조력을 받게 하자는 제도적 취지에, 나는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법원 중 하나가 위치하고 있는 전라남도의 한 지역에 마을변호사를 신청하였다. 

그곳은 합의체를 구성할 수 있게 지원장님 포함 총 3분의 판사님이 계시는, 작고 아담하고 농촌의 정감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평온한 곳이었다. 

마을변호사로 위촉된 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마을변호사와 상담을 하고 싶으시다는 것이었고, 메모에 남겨진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니, 중년의 아주머니께서 전화를 받으셨다. 아주머니께서 상담하고자 하는 내용은 “그곳에서 농사를 짓는데 남편과 사촌 간에 땅문제로 분쟁이 생겼다는 것이었고, 현재 문제가 된 땅은 남편이 시아버지께 상속받았는데, 시아버님께서는 생전에 문맹이셔서 부동산특별조치법 시행 당시 등기를 하는 과정에서 번지수를 적는 데 착오를 일으키신 것 같고, 그래서 번지수가 잘못된 땅에 등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아버지 생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와 남편의 사촌, 오촌들이 그동안 경작하고 세금까지 납부한 땅을 내놓으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등기가 명백히 잘못된 땅이 아닌 남편 명의의 다른 땅까지 경계에 관하여 문제를 삼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주머니께 현재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지 여쭈었는데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문의하셔서 특조법의 등기의 성격을 알려드렸고 아주머니께서는 시아버님께서 돌아가셨지만 잘못된 것을 이제라도 확인하여 바로잡고 싶다고 하였다. 대략적인 전화상담을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었다. 

얼마가 지나지 않아 아주머니께서는 다시 사무실로 전화를 하셨고, 사촌 간에 원만히 잘 해결하였다고 하시며 상담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셨다. 그리고 그 상담은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그 아주머니께서는 다시 사무실로 전화를 하셨고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대성통곡을 하셨다. 갑자기 법원에서 소장이 날라왔다는 것이다. 합의하고 끝난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등기가 잘못된 땅이 아니라 현재 밭으로 사용하는 땅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소송을 제기하였다는 것이다. 억장이 무너진다고 하셨다. 그 땅은 원래 임야였는데 시아버님 생전에 시아버님께서 하나씩 밭으로 일구어 놓으셔서 지금 일부를 밭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하셨고, 시아버님과 시어머님 묘소도 그 땅에 있다고 서럽게 우셨다.

내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도와달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농촌에서 지금까지 농사만 지었던 그분과 가족이 억울하지 않게 돕고 싶었고, 그분께 우선 소장관련 서류와 대한법률구조재단에 법률구조를 신청할 수 있는 서류를 보내달라고 요청한 뒤, 법률구조를 신청하였다. 그러나 위 재단에서 마을변호사 사건이라 구조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재단의 관계자분께서 설명하여 주시길 일부 반대의견이 있어 구조는 되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여 주셨다. 안타까웠지만 그 소식을 그분께 말씀드렸더니 변호사님께서 도와달라고, 작은 돈이라도 마련해 보시겠다고 하셔서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그 사건을 맡게 되었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면 5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그곳으로 우선 내려가서 직접 당사자분들을 만나 자초지종을 들은 후 그렇게 그 사건을 맡게 되었다.

원고는 약 10명 정도 되었고 피고는 1명으로 쟁점은 부동산특별조치법상 등기의 추정력이 번복되는 사안인지였다. 나는 판례를 검토하고 증거를 모으고, 증인신문을 준비하였다. 당시 원고측의 증인은 2명이었는데 한 분은 마을에서 최고령층에 속하시는 분으로 연세가 아흔 정도 되시는 분이었다. 증인신문 당시 원고측의 변호사는 위 아흔 가까이 되시는 증인에 대하여 죄인 취급하듯이 신문하였고, 증인신문 도중 잠시 휴식을 가졌을 때, 실무관은 뛰어나가더니 음료수를 몇병 들고 들어오셨다. 그리고 그중 한 병을 그 연로하신 증인분께 드렸다. 잠시 목을 축이시더니 갑자기 한탄 섞인 말투로 “내가 너무 오래 살았어. 진작에 죽었어야 하는데. 이런 꼴까지 보다니”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 한탄과 자조 섞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증인신문을 마치고 서울에 도착하니 한밤중이었고, 다음 기일은 현장검증을 하기로 되어 있어서, 현장검증 장소로 가야 했다. 

어느덧 연초가 되었고 추운 겨울에 현장검증을 하게 되어 미리 현장검증 장소에 도착하여 장소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예정된 시간에 현장검증은 시작되었다. 현장검증 내내 당사자인 원고와 피고의 갈등, 소송대리인들 사이의 신경전이 계속되었다.

현장검증 당시 당사자와 소송대리인들이 의견을 말하고 주장하는 가운데 일부는 언성이 높아졌고, 원고 소송대리인의 주장만을 들어주시는 듯한 분위기에 뭔가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한 분위기를 정작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피고와 부인인 아주머니는 현장검증이 끝난 이후, 억울하다고 하시면서, 피고는 너무 억울해서 못 살겠다고 하시며 욱한 마음에 ‘엄한 소리만 계속하는 원고와 대리인을 가만두지 못하겠다.’라고 ‘다같이 죽는 게 차라리 낫겠다.’라고 하시며 낫을 가지러 가겠다고 갑자기 뛰쳐나가셨고 부근에 계셨던 아주머니의 친정오빠가 간신히 말리고 이야기 하신다고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셨다. 아주머니께서는 차 안에서 시부모님 얼굴을 어떻게 뵙느냐며 대성통곡을 하시기 시작하였고 ‘자식만 좀 더 컸어도 이런 꼴 안 보고 그냥 죽는 건데’라고 하시다가 눈물 때문에 더 이상 말문을 잇지 못하고 울기만 하셨다. 한참 동안 아주머니를 달래고 진정시킨 후에 터미널로 가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를 탈 수 있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마음은 편치 못하였다. 

판결선고일이 잡혀 선고기일을 기다리고 있던 중 다시 조정에 회부하시겠다는 재판부의 연락을 받고 조정기일에 참석할 수 있는 기일을 요청드렸는데, 멀리서 굳이 안 오셔도 된다고 하시며 사촌지간인데 원만하게 조정을 진행하시겠다는 말씀과 함께 재판부에서는 조정기일을 잡으셨고, 나는 다른 재판과 겹쳐서 조정기일에 참석하지는 못하였다. 3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조정은 진행이 되었고 피고는 다소 많이 억울하지만(지분비율로 조정이 성립되었다) 땅은 그마나 팔지 않고 지킬 수 있어서, 그리고 과정들이 너무 힘들어서 원만히 마무리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렇게 마을변호사로서 첫 사건이 종결이 되었다. 

얼마 전 “동네변호사 조들호”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마을변호사로서 처음 내가 맡았던 그 사건을 떠올리며 ‘드라마 속 조들호는 그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였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건을 다시 회상하며 앞으로 좀 더 집중하고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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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아 변호사
사법시험 50회(연수원41기)
법률사무소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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