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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음] 일요일 아침의 창문

일요일 아침의 창문

이성미


일요일 아침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요일은 돌아오기 좋은 날. 일요일은 일주일마다 돌아오지.

집 안에서 보는 밖은 뙤약볕. 그늘 없이 반짝이고 안은 그늘. 건축물은 뜨거워지지 않았지만 일요일이니까 그늘에 머리를 넣고. 낮잠을 자고 일요일은 밖에서 흘러간다. 뙤약볕 아래서. 일요일은 창문 크기만큼 네모나고.

창밖을 보는 나는 헐렁하게 웃고. 일요일의 안쪽은 헐렁하니까. 하얀 빈칸이 가득한 새 원고지를 받은 아침처럼. 창밖이 눈부셔서 눈을 감고. 휘파람새가 내 귀가 열리기를 기다리다가 휘파람을 불고.

일요일은 일요일에 돌아오고 나는 일요일 아침에 집으로 돌아온다. 낮잠을 자는 동안

내가 낳지 않은 아이들이 일요일의 네모난 창문을 넘어 들어와서 나의 낮잠 속에. 손가락을 넣고 간지럼을 태우면 나는 창문을 넘어 슬리퍼를 신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가

아이들을 부르며 일요일로 돌아오고.

아이들은 영원히 대답을 하지 않는다. 일요일의 창밖이 고요해지고. 아이스크림이 다 녹고 나면. 맞아, 그랬지. 떠올리면서 일요일은 떠나고

뱀이 빠져나온 긴 초록 병의 입구처럼. 새로운 검은 병의 출구처럼.

일요일은 다시 일요일 아침으로 돌아오지. 





쇼팽을 좋아하지 않았다. 피아노를 배울 때 ‘피아노의 시인’쇼팽의 곡을 칠 수 있게 되기까지 길고 지루한 시간이 걸렸다. 피아노 선생님에게서 ‘CHOPIN’이라고 적힌 악보 책을 받아 들고 나는 물었다. 잘못 주신 것 아니에요? 초핀이라고 써 있는데요. 그때 쇼팽의 곡을 처음 쳐보았을 때나 유튜브에서 유명한 연주를 들을 때나 내 느낌은 똑같았다. 바닷속 깊은 곳을 보고 싶어서 스쿠버 자격증도 따고 어려운 기술을 연마했더니 물 위에 떠서 싱크로나이즈드만 하고 있는 기분. 바다 밑에는 대체 언제 들어가나요? 들어가긴 하나요?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는 쇼팽을 특히 좋아한다고 얘기한다.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나 보지. 쇼팽은 내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나는 쇼팽의 곡을 거의 듣지 않았다. 쇼팽의 입구가 어디쯤 있는지 내게 슬쩍 보여준 피아니스트는 작년 쇼팽 콩쿠르에서 1등을 한 조성진이었다. 나는 조금 열린 문틈으로 들어가 소콜로프가 연주하는 쇼팽을 들었다. 소콜로프는 나풀거리는 미려함과 화려한 테크닉에 묵직한 추를 달아서 단숨에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입구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불현듯, 열린다. 시의 입구도 그렇다.

사람들이 시가 어렵다고 할 때 나는 말한다. 문을 열어주는 시를 못 만나서 그래요. 시의 세계로 가는 문을 열어주는 시를 만나려면 계속 다양한 시를 읽어야겠지요. 그렇게 문이 열리면 그 시뿐 아니라 다른 시도 점점 잘 보이지요. 입구가 되는 시는 알려줄 수가 없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시집을 읽을 때마다 책장을 넘기며 내게 입구가 되어 줄 시를 찾는다. 그 시를 만나면 그 시인의 세계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 시집을 읽기 전의 나는, 그 시집을 읽고 난 뒤의 나로 바뀐다. 

그러니까 입구는 이전의 세계에서 나가는 출구이기도 하다.

어떤 일요일 아침도 내게는 하나의 입구였다. 일요일의 안쪽이 들여다보이는 문이 열렸고 나는 일요일의 세계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내게 시를 쓴다는 것은 어떤 사물의 입구, 어떤 시간의 입구가 불현듯 열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 틈으로 본 것을 기록하는 일이다. 문은 다시 닫힌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곳과 다르고 내가 잘 모르는 세계의 입구가 내 가까운 현실 속에 있다고 믿으며, 그곳을 통과하면서 내가 달라지고 그래서 달라진 현실로 돌아오는 일이 계속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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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미 시인
2001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 『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 『칠 일이 지나고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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