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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송이야기] 두 개의 특이한 성추행사건
사실 “나의 소송이야기”는 동료 변호사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건을 소개해야 옳다. 명색이 회보편집위원장의 직을 마무리하면서 그런 소송의 경험을 이곳에 남기고 싶은데, 오늘 내가 쓰는 소송이야기는 정보를 공유하기 보다는 도리어 인문학적 경험을 공유하고픈 나의 소송이야기이다.

나는 연수원 19기이다. 동기가 대법관(김소영 판사)이고, 법무부 차관(이창재 검사)이면 그 급이 최상급 변호사임에 틀림이 없는데, 소위 판사, 검사 출신이 아닌 연수원 출신 변호사이다 보니, 주요한 형사사건을 할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중요한 성추행 관련 사건 두 건을 수임하였고, 마무리하였다. 수임료가 중요한 사건이면 좋을 텐데 그렇지는 못했다. 하나는 2심사건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하나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으니 전자는 성공이요, 후자는 실패다. 그런데 그 결과가 내가 변론을 잘 해서가 아니고, 오직 그 성범죄자를 둘러싼 가족들이 잘 대처를 해 주어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한 집은 대처를 잘 했고, 다른 집은 대처를 못 했으면, 생태계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교과적인 설명이 가능할 텐데, 두 가족 모두 부족한 가족의 구성원을 위하여, 파렴치한 성범죄를 가족이란 이름으로 잘 보듬었지만, 결과는 극과 극이었다. 그렇다 보니, 형사재판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변호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판사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나는 바가 많아서 편집위원장을 마치면서 마지막 특혜성 글을 올리는 것으로 고별사에 대신한다. 

둘 다 아동성추행 사건이다. 프라이버시에 관련된 것이니, 구체적인 사건내용은 생략한다. 이번에 사건을 하면서 그렇게 아동성추행 범죄가 많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한 건은 특이하게도 가족 간의 성추행이라고, 동기 이명숙 변호사님의 소개로 성범죄를 많이 다루어 본 훌륭한 젊은 변호사님을 소개받아 많은 자문을 받았다. 나 자신이 그 친구(피고인 1)를 쳐 죽일 놈이라고 생각하다가 계속 면회를 하고, 변명을 듣다 보니 정말로 이 친구의 무죄주장을 이해하게 되었고, 편견없이 재판을 진행하는 재판장님의 협조로 어린 피해자의 거짓말 가능성을 테스트하기 위한 전문심리위원을 위촉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상식적인 판단을 뒤집기에는 쉽지 않았다. 정말로 내 의뢰인이 거짓말을 할 가능성도 높다. 그 전문심리위원은 너무나 많은 사건을 다루어 봐서인지, 내가 보기에는 형식적인 판단만 하고 피해자가 거짓말을 할 가능성은 없다고 너무 쉽게 결론을 내려 버렸다. 

약간의 화가 나면서, 내가 사법연수원 다닐 때 비전향 장기수 서준식 씨의 글이 생각났다. 판사들이 과연 형사사건을 재판하면서, 과연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정도의 고민을 하면서 자신에 대한 사회보호처분을 하는지 힐난하는 글이었다. 나는 그 전문심리위원의 짧은 글로 나의 최소한의 요청, 피고인을 만나 보고 결정하여 달라는 요청이 무참하게 거절당하다 보니 뜬금 없이 저 오랜 기억 속의 서준식 씨가 떠오른 것이다. 

사실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정말로 나의 피고인이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 어린 피해자가 피해를 가장하여 부풀리고 있는 것인지 말이다. 화가 좀 풀리고 나니, 판사가 오늘 점심을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정도의 나름의 룰을 가지고, 피고인의 거짓말과 참말을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즉 입증책임과 증거법칙에 따라 조금은 형식적인 재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인간이 하나의 우주보다 소중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주적인 고민으로 재판을 하다가는 남아나는 판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정이 중요하다지만, 결과가 안 좋으면(이 사건에서 결과는 무죄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요청대로 피고인을 만나 주는 것이다) 나처럼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 

피고인 2는 사건 자체는 지저분하지만 변호인으로서는 즐거운 경험이다. 나의 훌륭한 변론이 아니라 형제의 힘과 부부의 애정으로 용서(항소심 집행유예)를 받은 사건이기 때문이다. 봐라, 결과가 좋으니까 지저분한 사건이 좋은 사건이 되고 있다. 다 큰 어른이 이웃 여자아이를 성추행한 사건이다. 피해자의 가정이 원만하였다면 일찍 범인이 잡혔을 사건인데, 결손가정이다 보니 많은 시간이 흐른 이후에, 그 피해자의 상처가 깊어진 이후에 범인이 잡힌 사건이다. 나의 피고인이 검거된 것을 보면, 우리 경찰력이, 공권력이 많이 좋아졌다. 1심에서 나의 피고인은 전관변호사를 선임하여 열심히 무죄를 다투었다. 신분이 멀쩡하고, 오랜 시간이 흘렀고, 거의 무죄가 날 뻔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것은 전과 때문이다. 그 어른(내 피고인)이 지하철에서 추행을 하다가 벌금을 선고받은 전력이 문제가 된 것이다. 나의 생각이다.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되고, 가족들이 진실을 추궁하니, 이제는 자백을 한다. 그 뒤처리는 집안의 큰형 몫이다. 나에게 돈을 준 의뢰인이다. 합의도 중요하지만, 피고인의 부인, 의뢰인의 제수씨를 설득하는 것이 더 힘든 일이었다. 나의 남편이, 그것도 나름의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잘 키운 자식들의 아버지가 지하철에서 여자의 치맛속으로 손을 넣고, 그전에는 어린아이까지 성추행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가장을 믿고 가정을 지킨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제수씨를 다독거리고, 설득하고, 조카들은 남자들이니 술을 곁들인 대화로 해결을 했을 것이다. 어려운 가족 설득을 마치니, 피해자의 아버지를 만나는 것은 조금은 쉬운 작업이었다. 문제는 피해자의 집이 결손가정이다 보니, 과연 엄마를 만나서 합의를 할 것인지, 아빠를 만나서 합의를 할 것인지 같은 일이 조금 어려울 뿐이다. 그 합의의 과정을 지켜본 변호인 입장에서는 그 형님의, 자식들의, 부인의 노력을 그대로 법원에 전달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 다행이라고 하는 것은 살다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의타를 맞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피고인은 2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이 되었다. 

이렇게 비슷한 시점에 막장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성추행 사건을 진행하면서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들여보다 보니, 과연 이 사건에서 나의 의미있는 역할이 존재하는 것인지 회의도 들었다. 내가 하지 않고 국선변호인이 하였어도 똑같은 결론이 나왔을 것이고, 잘나가던 판사님 출신이 선임되었어도 결론을 동일했을 것이다. 차이라고는 국선, 나, 전관변호사의 수임료의 차이일 뿐일 것이다. 

마치 뒷부분 결론이 법조개혁을 외치는 비슷한 것이 되어 버렸는데, 내가 처음에 의도한 바는 내가 맡은 두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변호인의 역할이 아니라 피고인의 가족들의 역할이 한 인간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쓰다 보니, 일본에서는 거의 모든 형사사건은 국선이 담당한다는데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닌가, 우리가 형사사법에 있어서는 후진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어려운데 이런 쓸데 없는 소리를 해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제도를 바꿀 힘이 없어서 다행이다. 그래도 간혹 한두 건 형사사건을 수임해서 가뭄에 단비를 맛보는 우리 구멍가게 변호사들의 기분이나 잡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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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연 변호사
사법시험 제29회(연수원 19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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