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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법조인의 조언] 박선기 변호사 인터뷰
박선기 변호사는 송상현, 권오곤 등과 함께 법조계에서 기존의 송무나 법률자문영역이 아닌 국제무대에서 국제재판관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어가며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 개척자이다. 그는 1977년 경북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8년 제3회 군법무관 임용시험에 합격한 이후 한미연합사 법무실장, 육군법무감, 국방부 법무과장, 국방부 법무관리관(육군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86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석사를 취득하였다.
2000년부터 법무법인 대동에서 변호사로 활약하던 그는 2003년 유엔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United Nations 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Rwanda, UNICTR) 재판관에 선임되어 8년 동안 활동하였으며, 2011년에는 전문성과 성실성을 인정받아 기존의 유엔 전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UNICTY)와 유엔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UNICTR)의 업무를 통합한 유엔 국제형사법원(UN Mechanism of International Crimanal Trials, UNMICT)의 재판관으로 선출되었고, 이어 2017년 2월부터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세르비아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한 재판을 맡아 진행하기 위해 연말쯤 출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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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인 2016년 9월 말에 유엔 국제형사법원(UNMICT)에서 Judges conference가 있어 네덜란드 헤이그에 다녀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일로 다녀오신 것인가요? 
UNMICT는 United Nations Mechanism of 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s의 약칭으로 유엔 국제형사재판기구 또는 유엔 국제형사재판소로 불리며 UNMICT는 1995년부터 안전보장이사회가 창설한 전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와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의 잔여업무를 통합하기 위해 출범한 ICTY와 ICTR의 통합재판소로서 2012년 7월부터 그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2011년 12월 유엔 총회에서 25명의 UNMICT의 재판관들을 선출하였고, 이들은 대부분 ICTY와 ICTR의 재판관 경력을 가진 분들입니다. UNMICT는 25명의 선출된 재판관들이 상주해서 업무를 보지 않고 주어진 일들을 주로 각자의 나라에서 이메일과 우편으로 수행해 오고 있습니다.
이번 재판관들 회의는 지난 4년간의 UNMICT 업무와 현안들을 토의하고 또 UNMICT의 재판업무 규정 등을 심의하는 회의였고, 저는 내년부터 본격 심리가 진행되는 Stanisic 등 피고사건의 재판준비절차인 Status Conference에 참석하였고 이번 12월에 약 2주간 헤이그에서 재판 준비절차를 추가로 가집니다. 

2. 다음해인 2017년 2월부터 헤이그에 있는 UNMICT에서 세르비아 전 국정원장 Stanisic 등 2명에 대한 재판을 맡아 진행하기 위해 출국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들의 혐의는 무엇이며, 얼마 동안 어떻게 재판이 진행되나요? 

UNMICT는 ICTR의 경우 2012년 7월 이후에 선고되는 1심판결 사건, ICTY의 경우 2013년 7월 이후에 선고되는 사건들에 대한 항소심(법률심으로서 최종심) 사건들과 아직 체포되지 않은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 그리고 지난 20년간 재판받은 사건들의 피고인 증인들에 대한 재심, 가석방, 위증, 비밀증거해제, 증인보호프로그램 변경 등 광범위한 이슈들과 지난 20년간의 수사 및 재판기록 보존업무를 관장하고 있습니다. 
제가 맡은 재판사안은 우리의 국정원장격인 전 세르비아 State Security Service 수장인 Stanisic과 그의 상급부하인 Simatovic 두 피고인에 대한 ICTY의 1심재판이 잘못되었다는 ICTY 항소심 최종판결이 2015년 12월에 내려져 MICT에서 이 두 피고인에 대한 1심재판부를 다시 구성하여 재판하게 되었고, 2016년 1월에 25명의 재판관들 중에서 저를 포함한 3인의 재판관들이 재판관으로 임명되어 재판부를 구성하였고, 금년 내내 재판준비절차를 진행해 오고 있으며, 내년 2월부터 헤이그에 상주하면서 본격적 심리와 재판이 진행됩니다.
주요 공소사실은 보스니아, 크로아티아지역의 세르비아인들을 선동하고 군·경찰·민병대를 통하여 세르비아의 정치 군사지도자들과 함께 공모하여 보스니아계 무슬림 주민들에 대한 인종청소, 강제이주, 살상 등을 자행한 것으로, 법리적으로 피고인들에게 JCE(Joint Criminal Enterprise) 책임을 부과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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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03년에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 재판관으로 선임되어 일하셨는데, ICTR에서 하는 일은 무엇이며, UNMICT와는 어떤 관계인가요? 

유엔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UNICTR)는 아프리카 탄자니아 킬리만자로산 인근 Arusha에 위치하여 1994년 르완다내전당시 약 80만 명의 투찌부족을 3개월에 살상한 책임있는 르완다 전 고위직 등을 수사해서 재판하기 위해 1995년 설립되었고 2015년 12월에 재판소의 모든 임무를 종료하였습니다.
2003년 유엔 총회에서 재판관으로 선출되어 2004년 9월에 부임하여 2012년 6월까지 8년을 봉직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온 유엔 재판관들과 재판부를 구성해서 재판업무를 하였습니다.
8년간 총 8건의 재판을 하였는데 그 중 전 르완다 군참모총장인 Bizimungu 장군과 경찰청장인 Ndindiliyimana 장군 사건은 워낙 방대하고 피고인도 4명이 되어 심리만 5년 이상 진행되었습니다.
그 외 군지휘관, 가톨릭 신부, 고위관리 등의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재판업무 외에도 ICTR의 규정위원회인 Rules Committee 위원으로도 활동하였습니다.

4. 오랜 기간 군법무관으로서 복무하며 활동하시다가 ICTR 재판관이라는 국제형사 부문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저는 군법무관으로 오래 봉직하면서 한미연합사, 야전군사령부 육군본부, 국방부 등에서 다양한 직책을 수행하면서 국제회의, 유엔 PKO법률가회의참석을 통해 전쟁법, 국제인도법, 지휘관의 책임 등에 관하여 실무 등을 담당하였고, 또 미국 법대 유학과 미국 Law Firm에서 실무연수를 할 수 있었습니다.
2000년 퇴임 후 변호사업무를 하면서 2002년 권오곤 재판관과 송상현 재판관 두 분이 국제형사재판소에 진출하시는 것을 보면서 저도 그런 기회가 오면 도전해 보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2003년 정부의 추천을 받아 유엔 안보리심사를 거쳐 유엔 총회에서 2003년 6월 선출되었고, 2004년 9월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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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ICTR 재판관은 어떠한 절차를 거쳐 선임되고, 그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으며, 각기 다른 사고나 법리체계를 가진 국가 출신들의 재판관들 간에 어떠한 방식으로 사건에 대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나요?

UNICTR이나 UNICTY는 유엔헌장 7장에 의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창설한 국제 형사재판소입니다. 전통적으로 형사수사 및 재판권은 국가의 주권에 속하는 것이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인류의 평화 및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된 대량학살사건인 전 유고 내전 시 학살과 르완다 내전 시 대량학살의 주범들을 국제형사재판소를 창설하여 사법적 정의에 세우기로 한 것입니다. 제가 봉직한 ICTR은 최초 3명의 재판관으로 시작하였는데, 2003년에는 10여 명의 재판관들을 추가로 선출하였습니다.
우선 각국이 그 나라의 후보를 유엔에 추천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륙별, 남녀별 등을 고려하여 약 3배수의 후보를 유엔 총회에 올리고 최종적으로 유엔 총회에서 다득표 순으로 유엔 재판관에 선출됩니다.
UNICTR 1심 재판부는 제가 봉직하는 8년 동안 총 18명의 재판관들로 구성되었고 유럽에서 4명, 아시아 4명, 아메리카 태평양지역 4명,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6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각 사건마다 여러 지역의 재판관들이 재판부를 구성하도록 하여 재판을 하였습니다.
영미계 법리체계와 대륙법체계 등 다양한 배경의 재판관들이지만 재판을 진행하는 체계는 영미식 재판절차를 거의 따르기 때문에 모든 증언이나 기타 증거들이 법정에서 심리되고 탄핵되는 절차를 거치고, 3개월 재판하고 1개월 휴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재판부는 법정과 사무실에서 항상 쟁점들에 대해 그리고 수시로 제출되는 신청(motion)에 대한 결정문을 통해 실체와 절차에 대한 법률적 쟁점들을 정리해 나가기에 재판관 상호간에 의견을 조율하고 나누면서 진행하였습니다. 

6. ICTR을 우리나라 국내의 형사재판 진행과정과 비교하였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ICTR, ICTY 모두 거의 동일한 Statute와 Rule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ICTR의 경우 재판절차 전반을 다루는 약 130조문에 달하는 Rules of Procedure and Evidence가 재판절차와 증거에 관한 준칙이 되었습니다.

국내 형사재판 절차와 차이점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검사장 밑에 조사국(Investigation)과 검찰국(Prosecution Office)이 있어, 조사국에서 모든 조사 및 증거자료를 수집해서 검찰국에 넘기면 검찰국은 증거자료를 검토해서 공소사실확정 및 공소유지 업무만을 전담하게 합니다. 제가 담당한 사건 중 조사국에 근무하던 나이지리아 변호사가 승진해서 검찰부 소속 검찰관이 되어 공판검사의 일원으로 참여했는데, 변호인이 조사국 근무경력자가 공판검사로 관여하는 것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다행이 공소사건을 조사한 것은 아니어서 공판검사로 관여하는 것을 허용하였습니다. 이는 조사 및 수사에 관여한 조사관과 공소유지 검찰관의 임무를 분리하여 객관적이고 투명한 검찰권 행사와 공익의 대표자로서의 검찰의 지위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둘째, 검찰관의 철저한 자료공개의무입니다.
검찰관은 수사 및 조사에서 발굴된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과 연관된 모든 자료들을 재판 전에 반드시 피고인 측에 공개하여야 하며, 또한 검사가 부를 증인들에 대한 모든 보관 취득한 자료들을 반드시 피고인에게 공개하여 재판의 공정성과 검찰 및 피고인의 동등한 위상을 보장하여 줍니다.
검찰의 자료공개의무를 위반한 것이 추후 발견될 시 해당 증거의 증명력은 매우 약해지는 불이익을 받고 피고 측은 합리적 의심이 있을 때는 재판부의 승인을 받아 검찰 측 증거 데이터베이스를 검색·조사할 수 있습니다 

셋째 증인의 증언 투명성 확보입니다.
영미식의 철저한 공판중심주의이기 때문에 검사 및 변호인이 상대 측 증인을 사전에 접촉하는 것은 절대 금지되고, 증인신문 전이라도 증인신문 내용에 대해 사전 고지 및 내용을 미리 검토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분보호 증인의 경우 증언하러 도착하면 안전가옥에 머물고 증인을 접견하려는 검사 및 변호인들의 출입 등을 허가받도록 하며, 여러 날 증언하는 경우 증언이 시작된 이후는 휴식시간에도 증인을 신청한 검사나 변호인이 해당 증인을 만날 수 없습니다. 

넷째, 피고인의 직접대면권을 보장합니다.
성폭력 가해자 또는 가족을 직접 살해한 증인의 경우라도 증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피고인의 직접대면권과 반대신문권을 보장하여 재판부로 하여금 증인의 태도, 표정등을 보면서 증언의 신빙성 등을 판단하게 하는데, 우리의 경우 성폭력 피해자가 불원인 경우 피고인의 직접대면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과 구별됩니다. 

다섯째, 재판관여자 모두의 비밀준수의무 부담입니다.
증인 및 피해자보호 등의 사유로 관련자의 개인정보 및 증언내용 및 문서들이 재판부에 의해 비공개나 비밀로 분류되는 경우 재판에 관여한 재판부, 당해 사건 관여 법률보좌관, 법정 직원, 검찰 측, 변호인 측, 통역인 등은 재판과정에 지득한 위 비공개 증언, 진술, 비밀분류 자료들에 대한 비밀준수의무를 해당 사안이 공개결정 또는 비밀해제 시까지 부담하여 재판관여자 모두에게 고도의 업무상 지득한 비밀내용의 엄수의무를 부과합니다. 

여섯째, 피해자 대변제도입니다.
ICTY, ICTR제도는 아니지만 ICC에서는 피해자를 대변하는 변호인이 있어서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하게 합니다.

그 외 엄격한 증거능력제도,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이라는 법원칙, 그리고 알리바이 법리 등 실무적으로 그 운용에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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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ICTR에서는 선동행위 및 선동언행(Hate Speech)을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선동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나 판단기준 등이 ICTR에서 어떻게 정립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을까요? 

ICTR의 국제형사법적 기여에 있어서 전시 내전 등에서 여성에 대한 강간 등 성폭력을 단순한 전쟁범죄가 아닌 Genocide로 판결하여 전시 등 상황에서 종족, 종교, 국적, 인종을 파괴할 목적으로 여성에 대한 강간 등 성폭력을 Genocide로 처벌하게 하는 기념비적 판결이 확립되었고, 종족, 종교, 국적 그리고 인종에 근거하여 상대를 파괴할 목적으로 자행되는 모든 형태의 선동행위, 즉 방송, 노래, 글, 연극, 연설의 Hate Speech를 Genocide로 처벌한 것입니다. 이는 가장 순수한 국적, 종교, 종족, 인종의 이념이나 애국심, 종교적 신조 등을 앞세워 민중을 선동하여 상대방에 대한 살상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정치인, 종교인, 대중예술인 등의 증오연설 등이 사실상의 살상행위보다 더 엄중하게 처벌받아야 한다는 국제형사법적 개념으로 확립된 것으로서, 실제 증오연설등으로 사실상 폭력 살상 등이 발생하였는지와 무관하게 증오연설 등 선동행위 그 자체를 범죄의 완성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는 언론의 자유와 관련하여 많은 토의와 검토 끝에 판결로 이어졌고 9·11 테 러이후 유럽 각국에서도 종교, 인종, 종족 등에 의거한 증오연설, 사이버 공간상의 유포 등을 처벌하는 국내법을 제정하는 데 형사법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ICTR은 Akayesu 1심판결에서 ICTR Statute 제3조 (3)(c)에 의거하여 “공중이 모인 공공장소에서의 연설, 고함 또는 위협적 언사를 통하거나 또는 공공장소에서 인쇄물, 글의 전시, 전파를 통하거나 어떤 수단의 오디오나 비디오 등 통신수단을 통하여 Genocide(집단살해)를 직접적으로 부추기는 행위들”을 선동행위로 규정하며, 그 언행이 

① 다른사람에게 집단살해 등 파괴를 부추길 것
② 선동이 직접적일 것(the incitement was direct)
③ 그 선동이 공개적일 것(the incitement was public)
④ 피고인이 집단살해 등에 대한 구체적고의(specific intent)가 있을 것이라는 4가지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각종 증오연설, 글, 영상들이 사이버공간 SNS 그리고 정치적 연설등에서 그 심각성을 더해 가지만 유엔국제형사재판소에서 정립된 Genocide 관련 Hate Speech에 관한 법리가 직접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증오로 부추기는 선동언행이 인종, 종족, 국적, 종교에 기반하여야 Genocide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유럽인권법원에서 규제받는 증오연설의 판단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 진술자의 최초의 목적
(나) 그 진술자의 연설이 인종적이거나 불관용의 사상을 고의적으로 전파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대중에게 일반관심사에 대하여 알려주려는 의도인지를 구분
(다) 특별히 언론인이나 대중에 의한 정치인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은 허용됨
(라) 증오연설을 정치인이 하는 경우에는 정치인이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매우 엄격하게 해석하여 정치인의 증오연설을 방지
(마) 언론과 관련하여 언론인이 저자인 경우에는 정치인과 같이 엄격히 규율하여 증오연설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으며, 이는 다른 사람의 기고문 등을 게재하여 단지 전달하는 경우와 구별함. 
이와 관련하여 대중에 큰 영향을 끼치는 정치인이나 언론인, 종교지도자의 증오연설에는 그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처벌하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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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향후 2~3년간은 헤이그 소재 UNMICT에서 재판을 진행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장기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별한 계획이나 구상이 있으시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요. 

이번에 UNMICT에서 맡은 Stanisic 등 형사재판을 최선을 다해 법과 증거에 기초한 공정한 판결을 내리도록 하겠고 3인의 judge로 구성된 UNMICT의 Rules Committee member로서 유엔 형사재판절차 관련 규정들의 개선·발전에 노력하겠습니다. 장기적으로 UNMICT 재판관으로서 계속 봉직하면서 10여 년간의 UN 형사재판관 경험과 전문분야를 바탕으로, 북한인권향상 및 유럽인권법원, 아프리카인권법원과 같이 아시아 지역의 국제인권법원 탄생을 위해 노력해 보고 싶습니다. 

9. ICTR의 경험에 비추어 국내 재판 과정이나 법조계 전반에 제기할 수 있는 가장 큰 화두는 어떤 것이 있으신가요? 또 국제재판기구 진출을 희망하는 로스쿨생이나 후배변호사들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우리 법조계는 이제 더 이상 국내의 법률수요에 안주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우리 법조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잘 교육받은 법률전문가임에도 언어적 제한으로 광범위한 국제기구나 국제시장의 법률수요에 그 접근이 아직 미약합니다. 영어, 중국어 등 외국어를 열심히 연마하여 유엔이나, 각종 국제기구 그리고 외국 Law Firm, 외국회사 등에 과감한 도전이 필요하고 먼저 도전한 법률가가 한두 분야에 문을 열면 그 문을 통하여 더 많은 법률가들이 진출할 수 있기에, 정부, 대한변협, 장학재단 등에서 국제기구 등에 도전하는 법률가들에게 초기단계에는 관심과 지원을 제고시키고 대기업도 우수한 법조인들을 선발하여 국제업무분야에 배치하여 전문성을 높여 미래의 국가 및 기업의 법률인재로 양성하여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인터뷰/정리 : 안병희 본보 편집위원



박선기 변호사 약력 
-경북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1973-1977
-경북대학교 법과대학원 1977-1979
-사법연수원 1979-1980
-미국 조지워싱턴 법과대학원 1984-1986
-UNICTR Judge 2004-2012
-UNMICT Judge 2012. 7.-현재
-법무법인 대동 소속변호사 2000-2004, 2012 - 현재
-국방부 법무관리관 1998-2000, 육군소장
-육군법무감 1996-1998, 육군준장
-국방부 법무과장 1991-1993
-한미연합사 법무실장 1986-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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