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거의 친구 같았고
김복희 시인
201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옆집에서 폭죽 같은 게 터졌다
새 해 아침처럼 내가 몇 살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봄 다음에 여름
비, 타는 냄새, 희미한 새벽빛과 사람들의 목소리
작은 개는 짖지도 않고 비를 맞는다
맨발로 엎드려 토하던 여자 둘이 구급차에 오른다
그들이 몇 살인지 왜 같이 사는지 경찰관에게 말했다
친구가 우산을 씌워준다
해, 밤과 달
슬리퍼 밖으로 튀어나온 발가락
검은 연기가 거의 친구 같았고
더 나와야 할 사람은 없는지 소방관이 묻는다
입춘대길
봄에 일어서면 크게 기쁘리라
기둥에 붙어 있는 종이와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비에 젖는다
연기가 빠져 나간 후에 우리는 서서
옆 사람의 얼굴보다
불난 집을 본다
1층 아래 반지층
산처럼 오래 살고 바다처럼 재물이 쌓이리라
허락 없이 사람을 만져서
밥이 끓는다 새로 페인트를 칠하고
그을린 물건들이 길가에 쏟아진다
매일같이 인부들이 집을 버리고 집을 짓고
불났던 집을 못 본다
올 해 봄 새벽이었습니다. 오전 5시쯤이었을 겁니다. 부드러운 비가 오는 날이었습니다. 옆집에서 불이 났습니다. 고양이만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을 사이에 둔 집에서 난 불이었습니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한 동안 옆집에서 나온 물건들이 동네를 다 불탄 동네처럼 점거했습니다. 立春?吉은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다는 말일 텐데, 한문에 밝지 않은 저는 그저 봄이 일어서면 크게 기쁠 텐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동안 봄은 늘 주저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동네에는 1인 가족이 많은 편이고, 2인 이상이더라도 노부부가 살거나, 젊은 부부가 개나 고양이와 살거나 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그도 정확하지는 않은 것이, 우리들은 서로 모르고 인사도 큰 사건도 없이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여하간, 먼지 가득한 봄 와중 비 오는 새벽, 군밤 같은 게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순간, 나는 설날 아침을 맞이하는 것처럼 뭔가 어색하고, 낯선 기분이었습니다. 서늘한 공기 속에서 나만 모르게 뭔가 바뀌었는데 모두가 분주하기에 다소 민망해하면서 서둘러 세수를 하고 깨끗한 옷을 입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2년째 세 들어 살고 있는 서울 어디가 아니라, 친척 큰집의 낯선 방에서 잠들어 있던 것 같았습니다.
‘불이야, 불이야!’새해 아침처럼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고,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문을 열고 나오는 소리가 들려왔고, 매캐한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황급히 나가보니, 옆집의 반지층에서 검은 연기가 비에 젖지도 않고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반지층 바로 앞에 주차된 차 주인들은 발을 구르고 있었고, 사람들의 강아지도 같이 나와서 품에 안겨 검은 연기를 보고 있었습니다. 소방차, 구급차가 왔고, 몇 명이 더 건물에서 입을 가린 채 뛰어 나왔고, 경찰차도 왔고, 사람들은 비를 맞으며, 더러는 우산을 쓰고 건물을 보고 있었습니다. 제 또래의 여자들이 엎드려 토하고 있었습니다. 먹은 것이 없었는지 그냥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반지층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절반의 지하라는 것은 절반의 지상이라는 말처럼, 절반의 천국, 절반의 지옥, 절반의 삶, 절반의 밤 그런 것처럼 애매한 것을 알 만한 단어로 써서 꾸며놓은 것 같았습니다. 여기저기 살아보기 전에는 몰랐지만 분명히 거기 있는 집이고, 우편물도 받고 세금도 내는 집입니다. 그러니까 주저앉아 있는 봄을 지나서 와버리고 마는 여름이나 가을은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불 타버린 집의 불 타버린 세간은 전부 버려질 거고, 그 다음에 오는 사람과 생활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 걸까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들이 다투다가 불을 냈다고도 하고, 생일을 축하했다고도 했습니다만, 끝내 왜 불이 났는지 저는 자세히 묻지 못했습니다. 옆집에 다시 사람이 사는지 어떤지도 모르는 채 다른 계절이 와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 저는 조금 주저하면서 그녀들의 등에 우산을 씌워주었지만, 얼굴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한참 동안 웅크린 채 비를 맞던 그녀들의 맨발을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해집니다. 겁을 먹고 그녀들을 보았고, 건물을 보았습니다. 생각지 못한 재앙이 닥쳐왔을 때, 그게 표면적으로 내 일은 아닐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알게 되는 걸까, 정들고 아꼈지만 버려지는 불 탄 가구들 같을까 확신 없이 생각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