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설국열차’에는 배우보다 유명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바로 꼬리칸 사람들의 주식인 단백질 블록이다. ‘양갱’처럼 생긴 단백질 블록의 정체가 곤충이라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과연 곤충을 먹는 것은 충격일까?
“뻔~”
요즘 세대는 짐작할 수도 없을 만큼 낯설게 다가오는 이 소리는 1960~70년대 동네 골목을 누비던 번데기 장수가 외쳤던 말이다. 짭짤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나는 번데기는 당시 인기 좋은 길거리 간식 중 하나였다. 그 시절 농촌에서는 메뚜기를 잡아 구워먹기도 했다. 지금의 중장년층에게 번데기와 구운 메뚜기는 추억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곤충식’의 원조였다는 생각도 든다.
메뚜기, 번데기가 식용곤충의 1세대라면 요즘 많이 알려진 고소애(갈색거저리유충), 꽃벵이(흰점박이꽃무지유충), 장수애(장수풍뎅이애벌레), 쌍별이(쌍별귀뚜라미) 같은 식용곤충은 2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 4종의 곤충들은 과학적으로 안전성이 입증되어 식약처로터 식품원료로 인정받았다. 지난해 대국민 공모로 친근한 이름을 갖게 된 이후부터 다양한 요리재료로 활용되고 있다. 레토르트 스프, 쿠키, 쌀, 순대뿐만 아니라 병원 환자식 등 일반식품으로 개발되고 있다.
식용곤충은 양질의 단백질원이지만, ‘벌레’라는 선입견을 해소하기 위해 분말이나 액상 형태로 가공해 사용한다. 때문에 식용곤충을 재료로 한 음식의 맛과 모양은 일반 음식들과 거의 차이가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공식 인정하는 식용곤충은 메뚜기, 누에번데기, 백강잠을 포함해 7가지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약 20억 명의 인구가 2,000여 종의 식용곤충을 먹고 있다고 한다. 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지만, 최근에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곤충 가공식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식용곤충을 넣은 에너지바, 시리얼, 통조림 등이 출시돼 유통 중이고, 네덜란드에서는 곤충과자, 곤충햄버거 등을 슈퍼마켓에서 살 수 있다.
식용곤충 못지않게 주목을 받고 있는 분야가 바로 의약소재 곤충이다. 특허청 발표에 따르면 곤충소재 의약품 관련 특허가 2005년 2건에서 2014년 26건으로 대폭 늘어났다. 특허내용을 보면 주로 곤충이 분비하는 생체방어물질을 이용해 암, 치매, 심혈관계 질환, 알레르기 등을 치료하는 것이다.
최근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곤충유래 의료용 소재들은 우리 농업의 지속성장을 위한 새로운 기술 개발 방향을 제시하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애기뿔쇠똥구리에서 추출한 ‘코프리신’은 여드름과 같은 피부병원균에 항균효과를 나타내며, 염증성 장 질환 치유에도 효과를 나타낸다. 왕지네가 분비하는 ‘스콜로 펜드라신1’은 아토피 피부염에 효과가 있다. 또한 다 자란 누에를 수증기로 쪄서 말린 ‘숙잠’은 알코올성 지방간과 위염, 중성지방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고, 숙취해소에도 탁월한 것으로 밝혀졌다.
누에실크를 이용한 인공고막과 임플란트 시술 시 잇몸 뼈가 잘 생길 수 있도록 돕는 실크차폐막도 상용화에 성공했다. 실크차폐막은 기존 고어텍스소재 차폐막보다 8배, 콜라겐소재 차폐막보다 2배 정도 우수하다. 최근에는 ‘바이오 3D실크프린팅 시스템’을 개발하고 누에고치에서 추출한 실크잉크로 뼈 고정판·뼈 고정나사·뼈 고정클립을 제작하는 데도 성공했다. 실크로 만든 뼈 고정판 등은 우리 몸 안에서 생분해되는 특성이 있어 골절수술 뒤 고정판 제거를 위한 2차 수술이 필요 없다. 또한 두개골이나 턱 같은 곡면 형태의 뼈도 환자에 맞게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곤충은 환경 정화에도 톡톡한 역할을 한다. 동애등에 유충 1마리는 하루에 2~3g의 음식물 쓰레기를 분해하고, 성충이 되면 수분만 먹고 자라기 때문에 인체에 해가 없다. 쇠똥구리가 굴린 쇠똥은 유용한 미생물 번식을 위한 영양성분이 많아 토양개선에 도움이 된다.
곤충은 정서적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지난해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왕귀뚜라미 기르기가 우울증과 인지 기능을 개선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왕귀뚜라미는 초보자도 쉽게 키울 수 있어 앞으로 반려곤충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도 할 수 있게 됐다. 이외에도 개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의 기능성 프리미엄 사료와 양식어류의 어분대체용 사료에 곤충을 활용하고 있어 앞으로 곤충의 무한한 가능성이 기대된다.
농촌진흥청은 올해 10월 ▲쌀가루 ▲스마트 팜 ▲반려동물 ▲밭농업 기계화 ▲곤충 등 5개 분야를 농산업의 지속성장을 위한 긴급현안 분야로 선정하고 연구·개발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를 출범시켰다.
곤충은 식품, 의약소재는 물론 환경, 사람의 정서까지 치유할 수 있을 정도로 활용가치가 높다. 곤충산업이 농업의 미래 성장 동력의 한축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모아지면서 곤충의 가치가 재발견되고 있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는 것처럼 앞으로 곤충산업의 화려한 변신이 기대된다. 영화 설국열차의 단백질 블록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정황근 농촌진흥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