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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기고] 일본 변호사계의 파벌을 해부한다 2
2015년 6월 24일자 토우요우케이자이(東洋經濟) 온라인판에 기초하여(번역에 대한 동의를 받았음) 일본 변호사계의 파벌에 대하여 써 보는 두 번째 글로, 이번에는 나머지 변호사회 회파 및 회파의 역할과 그 의미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2도쿄변호사회(이하 ‘2변’)의 경우도 회파가 탄생한 때는 2차대전 후다. 현재는 紫水會、全友會、五月會、히비야 클럽이 4대 회파로 여겨지고 있으며, 이 중 가장 오래된 五月會의 전신과 일본 법조클럽(지금은 소수회파)이 발족한 것이 1949년 전후. 발족의 계기는 2변 자체의 회장 선거였고, 1955년에 五月會에서 히비야 클럽과 淸友會가 분리 독립했고, 1975년에 淸友會에서 新風會가 독립했다. 五月會, 일본 법조클럽 등과는 전혀 달리, 全友會는 좌익계의 혁신파 변호사가 1970년에 창설했고, 현재 최대회파라고 일컬어지는 紫水會는 1980년에 全友會에서 분리 독립한 것이다. 
 
2변의 경우에도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소수파벌인 淸友會뿐이다. 게다가 복수회파에 가입해 있거나 어느 회파에 가입해 있는지 자각이 없는 회원이 많아, 회원명부조차 정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 한다. 1변 이상으로 소속 인원수의 파악이 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것은 알기 어렵지만, 회파에의 입회율은 3~4할 정도라는 설이 유력하다. 1변과 달리, 4대 로펌 중에는 앤더슨 모리 토모츠네와 모리 하마다 마쓰모토가 2변 중심이다. 
 
오사카에서는 1893년 변호사법이 시행되자 바로 현재 회파의 원류가 된 조직이 탄생했고, 그 후 분열과 통합, 새로운 회파의 탄생 등이 반복되어 그 결과 현재의 회파 수는 7개로 되어 있다. 오사카는 동변처럼 인원수 관리가 엄격하며, 7개 회파 가운데 法友俱樂部와 法曹同志會를 제외한 5개의 회파가 홈페이지를 보유하고 있다. 
 
최대 회파인 友新會는 1899년에 설립되어 7개 회파 중에서는 가장 역사가 길며, 나머지 6개 회파 가운데 春秋會와 五月會 이외의 4개 회파도 모두 전쟁 전에 탄생한 역사가 있다. 1958년에 友新會에서 분리·독립한 春秋會는 몇 년 전까지는 오사카변호사회 최대 회파였고, 五月會는 春秋會에서 1971년에 분리 독립한 것이다. 최근 友新會의 인원수가 春秋會의 인원수를 상회하게 된 이유는, ‘春秋會의 소속회원이 개인 대상의 일반민사를 취급하는 영세규모의 사무소가 많은 반면, 友新會 소속회원은 손해보험회사로부터 교통사고 관련 처리를 도급받는 업무가 주류인 사무소가 많아 신참변호사 채용에 적극적이고 회원수의 성장이 크기’ 때문이라 한다. 오사카변호사회의 경우 회파 입회율이 85%를 넘고 있지만, 이전에는 거의 100%였기 때문에 최근의 입회율 저하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아이치현변호사회의 5개 회파는 어느 곳도 홈페이지가 없다. 無名會와 淸流會 이외는 2차대전 전에 탄생하는 등 역사는 오래 되었고, 현재 최대 회파는 淸流會다. 
 
이외에도 지금으로서는 회파라고 할 정도의 인지도는 없지만, 등록 10~15년째를 정년으로 하는 청년변호사회 간의 활동이 최근 활발해지고 있다. 1변 全期會의 청년변호사 조직인 全期旬和會나 동변의 親和全期會, 소위 회파가 없는 후쿠오카나 요코하마의 청년변호사들이 교류를 깊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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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일변련 회장의 소속회파, 출처 : 東洋經濟 2015. 6. 24. )
 
원래 회파는 단위회 인사나 일본변호사연합회(이하 ‘일변련’) 회장 선거를 위해 탄생한 것이며, 선거 지원이 회파 활동의 주요업무인 것은 틀림없다. 종전 후 일변련 회장을 맡은 변호사는 모두 그가 소속한 회파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도쿄 3개회와 오사카회가 돌아가면서 일변련 회장을 배출했고, 도쿄 3개회와 오사카회 이외에서 일변련 회장을 배출한 단위회는 지금까지 효고현변호사회 그것도 한 번뿐이었다. 1970년대 이후 일변련 회장의 출신회파가 변모하고 있는 것은 회파의 소속 인원수와 무관하지 않은데, 예를 들어 1977년 이후부터 1변 출신의 일변련 회장은 모두 全期會 출신자 중에서만 나왔다. 
 
선거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인원수가 중요하므로, 역대 회장 중에 최대 회파 출신자가 많은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회파에 속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회장이 될 수 있었던 사람은, 지금까지 크레디트·고리대금업자대책 변호인단이라는 강력한 네트워크가 있었던 우쓰노미야 겐지 변호사뿐이었다. 특이하게도 2변은 1994년 당선된 쓰치야 코우켄 회장 이후 20년간이나 회장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 “좋든 싫든 강한 개성의 변호사가 많아 회장 선출의 의사통일도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최대 회파 紫水會 소속변호사의 전언)” 후보가 세워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선거운동이 회파 활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회파는 선거운동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각종 위원회 활동이나 연구회는 상시 행해지고 있고, 동변의 法友會과 法曹親和會는 매년 두꺼운 정책제언집을 작성하고 있다. 정책제언집에서 취급되는 테마는 다방면에 걸치며, 이 두 회파가 작성한 제언이 일변련의 공식의견으로 채택되는 경우도 많다. 
 
한편, 최근에는 클라이언트로부터의 대량의 메일이나 밤낮을 묻지 않는 전화 공세에 시달린 변호사들이 급증하고 있어서, 그런 1인사무소 변호사의 다친 마음을 위로하는 일도 회파 활동의 중요한 업무의 하나로 되어가고 있다. 의욕적인 청년변호사가 회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인맥을 개척하고 선배변호사로부터 업무를 배우는 등과 같은 혜택을 누리는 경우가 있는 반면, 목전의 업무를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힘든 청년변호사들은 좀처럼 회파 활동에 관심을 가지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수습 54기 모 변호사의 다음과 같은 말은 회파의 역할을 실감하게 해 준다. “변호사는 사무소에 소속되어 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고독한 직업이다. 갑자기 하나의 일 때문에 정신적으로 매우 피폐해지기 쉬운데, 이렇게 곤란할 때야말로 회파는 의외로 의지할 수 있는 곳임을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일본 변호사 업계의 단위회 및 그에 따른 회파의 역사와 실태, 그리고 역할 등을 살펴보았으며(이하 사견), 많은 부분에서 우리 변호사회의 조직이나 현상과 다른 점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우리보다 지역이 넓고 인구가 많은 만큼 많은 단위회가 존재하고 있고, 우리보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각 단위회 내에도 역사적으로 오래된 회파가 존재하여 회장 선거에도 막강한 영향을 미쳐 온 점은 흥미롭기도 하다. 반면, 그러한 회파가 각종의 위원회나 연구회를 통해 정책을 제안하는 등의 활동 기반이 되고 있는 모습, 또 업무상의 스트레스에 지친 개인변호사들의 위안이 되어 주는 역할 등은 우리 변호사회에서도 적극적으로 참고할 만한 사항으로 생각된다. 2만 명이 넘는 변호사를 보유하게 된 우리 변호사협회도 법조통합과 직역수호를 위해 해야 할 업무가 많은 만큼, 향후 더욱 체계적인 위원회 및 연구 활동 등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는 우리 변호사 단체들의 발전적인 모습을 기대해 보면서, 2회에 걸친 부족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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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중혁 변호사
변호사시험 제1회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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