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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Humor), 채플린과 드보르작의 평행이론

개그(Gag)와 유머(Humor)는 차이가 있다. 모두 웃는 것임에는 분명한데 차이가 있다. 말솜씨를 뽐내거나 소동을 피우거나 기괴한 행동을 하는 여부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무겁게 할 심오한(?) 문제가 걸려있다.

개그와 유머는 모두 긍정적인 것이고 서로 간에 우열이 있지 않다. 개그는 휘발성으로 웃음을 선사하면서 주위를 환기시키고 긴장을 풀어준다. 반면 유머는 상대를 따뜻하게 바라보면서 스스로 허물을 보여 자신을 낮추는 행동이다. 어쩌면 진정한 유머란 단지 웃기고 웃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상대가 가지고 있을 슬픔, 상처, 아픔을 위로하는 것이어야 한다고나 할까. 유머(Humor, Humour)가 인간(Human)과 같은 어원을 가진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이렇듯 유머는 숭고한 인간애(Humanity)에 기초하고 있다.

 


한때 세상은 혼란스러웠다. 1차 세계대전, 대공황, 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혼돈의 시대에 채플린의 희극은 만인(萬人)의 화두였고 사해(四海)의 유머였다. 사람들이 실업과 전쟁에 고통 받고 있을 때, 전 세계 사람들은 그의 광대놀음을 보면서 크게 위로 받을 수 있었을 게다. 성장과정에서 아픔과 상처가 많았던 채플린은 철학적이고 진지한 인물이었지만, 사람들 앞에 서서는 자신의 부족함과 허물을 모두 보여주었다. 정신병을 가진 어머니와 폭력과 음주를 일삼는 아버지에게서 자란 채플린은 유머의 코드로써 사람들을 위로하며 희극배우로서 대성했다. 그것은 채플린(Charles Spencer Chaplin, 1889~1977)이 인류에 남긴 ‘유머’의 위대한 힘이었다.

 

그보다 앞서서, 어떤 음악가가 있었다. 도축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드보르작(Antonín Leopold Dvořák, 1841~1904)은 일찍이 남다른 재능으로 음악을 배워 자립했지만, 정작 늘 일거리가 부족하여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신을 알아주는 곳이 있으면 그는 어디든 달려갔다. 그는 영국, 러시아, 미국 등등 여러 곳을 전전했고 고향 체코로 돌아오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능력 없는 아버지를 따라 다니면서 병마와 부침을 경험하던 세 아이들은 모두 세상을 일찍 등졌다.

 


그는 교향곡과 실내악에서 모두 뛰어났지만, 실패작도 유독 많았다. 필자가 기억하는 그의 명곡은 교향곡 <신세계로부터>, 피아노3중주 <둠키>가 아니라, 오히려 소품인 <유모레스크(Humoresque, 유머스럽게)>다. 드보르작이 19세기의 유행에 따라 만들어 낸 짧은 소품이지만 곡의 무게는 가볍지가 않다.

곡은 밝은 경쾌함으로 시작하지만 곧 슬픔과 애잔함이 밀려들고 가슴 한켠을 무겁게 만드는 뭔가를 드러낸다. “유머=장난”, “유머=재미”에서 그치지 않고 진정으로 “유머스러운(Humoreque)” 것들을 고민하게 해 준다.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음악을 시작하게 된 청년이 겪었을 아픔과 상처, 음악가로 성공하기까지 망가진 가정에서 느꼈을 삶의 고단함, 수많은 나날 동안 고민했을 번뇌와 후회가 담뿍 담겨 있다. 그는 스스로를 낮추면서 우리를 차분하게 위로한다. 드보르작이 표현한 “유머”는 웃기고 기분 좋게 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유머스럽다는 것이 무척이나 인간적인 것이라는 점을 알았다. 문제적(?) 인간 드보르작은 유머(Humor)로써 상처로 옹이진 내면을 보이면서 상대에게 여유와 배려를 보여줬다.

 

채플린과 드보르작. 얼핏 보면 다른 시대를 살았고 아무 관계도 없는 예능인들이지만, 그들이 공통으로 남긴 “유머”는 다른 이를 보듬고 그들의 지독한 상처를 위무하는 인간애를 보여주었다. 유머와 인간애, 이것이 그들의 상관관계(Correlation)이고 그들이 남겨준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이었다.

 

유재원 변호사

법률사무소 메이데이(MAYDAY)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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