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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한다는 것의 비애영화 ‘나는 부정한다’, ‘대립군’ 감상평

처지에 따라 취향이 바뀐다. 연애가 본분이었던 대학 시절에는 ‘클로저(2004)’,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 ‘이터널 선샤인(2004)’ 같은 로맨스 영화가 마음을 흔들어 놓았고, 군대 시절에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 ‘밴드 오브 브라더스(2001)’, ‘쇼생크 탈출(1994)’ 같이 처절한 전쟁과 부자유에 관한 영화를 보고 또 보았다. 변호사가 된 이후에는 ‘나는 부정한다(2016)’, ‘대립군(2017)’이 예고편부터 자꾸 눈에 밟혔다.

 

‘나는 부정한다(2016)’는 법정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이야기 구조도 간단하다. 유대계 역사가 데보라 립스타트(이하 주인공)는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데이빗 어빙을 비판하는 글을 출판했고, 데이빗 어빙은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며 주인공을 고소한다. 주인공은 진실을 부정하는 사이비 역사가와 법정 싸움을 벌이고, 결국 승소한다.
눈여겨본 부분은 이 영화에 나온 변호사들이다. 주인공은 객관적인 진실을 부정하고 거짓말을 일삼는 사이비 역사가를 보고 분노한다. 그녀의 분노는 정당하지만, 법정 싸움에는 그 분노가 오히려 소송 진행에 방해가 될 때가 있다(영화의 이 대목에서 많은 변호사님들이 공감할 것이다). 이 영화 속 변호사들은 주인공의 분노를 잠재우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데, 분노하는 주인공을 때로는 회유하고, 때로는 무시한다. 개인적인 경험 때문인지 주인공보다 그녀의 변호사에게 감정이입을 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변호사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영화처럼 재판의 당사자는 억울하고 화나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것이다. 누구나 송사에 휘말리면 그렇다. 그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지만, 세련되게 표현하기 어렵고 때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제3자가 당사자를 대신해 줄 필요가 있다. 의뢰인을 대신하는 변호사는 그 의뢰인의 입장에 공감해야 하나,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 분노한 당사자를 대신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재판은 결투장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영화 ‘대립군(2017)’은 대신한다는 것에서 출발했다. ‘대립군(代立軍)’은 한자 그대로 ‘남을 대신하여 서있는 군대’이다. 남의 군역(軍役)을 대신 서고 돈을 받는 일종의 용병이다. 이들이 호위하는 자는 광해군, 역시 선조를 ‘대신’하여 왕의 역할을 하도록 명령받은 자다.
대립군과 광해군 모두 자신을 위해 전쟁터에 선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목숨이 달렸다. 대립군은 죽으면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한다. 광해군의 승리는 모두 선조의 공으로 돌아갈 것이다. 대신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지날수록 대립군은 자기 자신을 위해 싸우기 시작하고, 광해군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시작한다. 대립군은 어느 순간 용병이 아닌 의병이 되고, 광해군은 백성들을 자기가 지켜야 할 국민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영화 ‘나는 부정한다’의 중반, 주인공은 때로 변호사를 의심하고, 변호사에게도 분노를 표출한다. 나중에서야 자신의 변호사를 신뢰하고, 판사는 진실의 편을 들어준다. 소송이 승소로 끝나고, 주인공은 기자회견장에 나아가 당당한 승리자로서 발언한다. 그 시점에 그녀의 변호사들은 자기 사무실에서 조촐한 축하를 할 뿐이다. 승소는 당사자의 것이니까.

‘나는 부정한다’와 ‘대립군’에서 보듯이 남을 대신한다는 것은 일정한 냉정과 일정한 비애를 담고 있다. 성공도 실패도 내가 아닌 너에게 귀속되므로, 나는 좀 더 냉정한 판단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만큼 결과에서 소외된다. 소외되는 만큼 비난받기 쉽다. 비난받기 쉬움에도 불구하고 남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것은 때로 비애가 된다.

김우중 변호사
법무법인 동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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