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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식과 무죄

 

 

의뢰인은 젊은 사람이었다. 또래들과 달리 그는 문화재를 좋아했다. 오래된 나무 냄새, 먼지 냄새가 깃든 고서 그리고 색이 바랜 불화를 아꼈다. 그는 결국 문화재와 관련된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스스로는 훈증공이 되어 고서와 불화의 보존에 기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큰 규모의 문화재수리업체에서 일을 해 오다가 세월이 조금 흘러 스스로 기반을 갖추게 되자 자신만의 문화재수리업체를 열었다.

우리나라 국보 1호가 불에 탔다. 건설만 하던 사람들이 행정을 맡게 되자 저렴한 가격으로 빨리 재건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고, 몇 년 사이 다시 지어진 남대문은 하자투성이가 되었다. 근본적인 탓은 뒤로한 채 문화재수리업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되었다. 언론은 “문화재수리=사기”라는 식으로 몰아갔다. 이 친구도 그 바람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그의 사무실에 이름을 걸어둔 70대 노인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문화재 쪽에서는 문화재청 관계자들도 찾아와서 자문을 구하는 표구공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 인사동 화랑가 귀퉁이에 작은 점포 하나만을 두고 장기와 표구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노인은 자문을 해 오던 중 젊은 친구가 운영하는 문화재수리업체를 알게 되었고, 부탁을 한다.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면 그의 사무실에 자신의 이름을 좀 올려 주면 안 되겠냐는 것이다.그 대가로 딱히 바라는 것은 없고, 다만 자기가 아직 쓸 만하니 표구업무와 관련해서 자문해 줄 것이 있으면 업무를 도와 줄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안 되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약 2년간 젊은 친구가 운영하는 업체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실제 몇 건에 대한 자문을 해 주기도 했다. 참고로 의뢰인의 수리업체는 노인의 자격증을 더 얹지 않더라도 수리업체로서의 요건을 모두가 갖추고 있었고, 전속 표구공도 있었다.

문화재수리업자에 대한 수사는 이들에게도 미쳤다. 노인은 수사기관에서 젊은 친구의 사무실에 자신의 자격증을 맡기는 대신 월 10만 원을 받았고, 2년 사이 두세 건의 자문을 해 주었다 말했다. 검사는 그런 게 대여라면서 대여한 게 맞는지 몰아 붙였고, 노인은 “그럼 대여한 게 맞겠지”라고 대답했다. 젊은 수리업자 역시 수사를 받게 되었고, 노인에 대한 조서를 보여 주면서, “이 사람이 대여했다고 하는데, 당신이 부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네, 대여받은 게 맞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결국 둘은 약식기소되었다. 죄명은 문화재수리업법위반(자격증대여).

법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문화재수리 기술자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성명을 사용하여 문화재수리 등의 업무를 하도록 하거나 문화재수리기술자 자격증을 대여하여서는 아니 된다.” 대여받은 경우에도 처벌은 이루어진다. 이전까지 문화재수리업법에 관한 판례는 많지 않았고, 자격증 또는 명의대여에 관한 것은 전무했다. 다른 법의 해석을 유추해 볼 수밖에 없었다. 관세사법, 구 부동산중개업법 등에 관한 사안에서는 대법원은 일관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자격증의 대여’란 다른 사람이 그 자격증을 이용하여 해당 자격증 보유자로 행세하면서 자격증 보유자의 업무를 행하려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자격증 자체를 빌려주는 것을 말하므로, 만일 자격증 보유자가 무자격자로 하여금 그 자격증 보유자 명의로 개설등록을 마친 사무소의
경영에 관여하거나 자금을 투자하고 그로 인한 이익을 분배받도록 하는 경우라도 자격증 보유자 자신이 그 사무소에서 자격증 보유자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고 무자격자로 하여금 자격증 보유자의 고유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지 않는다면, 이를 가리켜 등록증·자격증의 대여를 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쉽게, 자격증을 대여하거나 대여받더라도 대여받은 사람이 무자격자가 아니고, 자격증 고유의 업무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면 처벌이 전제되는 “대여행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피의자신문조서를 보면, “빌려준 게 맞네요”, “네 맞아요”가 무한반복 되던 끝에 피의자들은 범행일체를 자백한 것이 되어 ‘자격증대여’로 기소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처벌이 되는 “대여행위”의 법적 의미를 설명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젊은 수리업자는 정식재판을 청구하고 다툰 끝에 무죄판결을 받았고, 검사의 항소도 기각되었다. 재판과정에서 다른 법원에서도 유사한 취지의 판결이 선고되었다. 물론 다른 법원에서 마찬가지의 무죄판결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훨씬 후의 일이다. 하급심판결에 대한 검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니 우리 업계의 정보는 언제나 느리다. 

 

간단한 구약식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거창한 제목의 나의 소송이야기로 쓴 이유는 얼마전 노인 표구공으로부터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참고로 노인은 사건의 증인으로 만나게 되었다. 노인은 무죄판결 소식을 들었다면서 자기는 다투지 않아서 벌금 500만 원이 확정되었는데, 어떻게 억울함을 좀 하소연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는 것이다. 이런 저런 안내를 해주고, 마음에 불편함이 남았다.

검사는 끝내 상고를 했다. 상고 이유는 한 가지다. “그게 어떻게 빌려준 게 아니냐”라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문화재수리기술자들이 이러한 이유로 영세한 살림살이에, 구약식의 특성상 법원의 판단조차 받아보지 못하고 벌금형의 부담까지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대법원의 확립된 판결을 무시한 채 “그게 빌려준 게 맞잖아”식 수사의 희생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죄판결에 대한 검색이 여의치 않아 (대부분) 국선변호인들이 이들에 대한 구제를 포기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 새로운 논리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을 것임에도 전혀 알 길이 없다는 막막한 느낌을 받은 적도 많이 있었다.

대법원에서 무용한 상고에 대한 적절한 판단을 해 주리라 기대해 본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들, 하다 못해 우리가 정보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문제들은 끊임없이 요구를 하고 고쳐 나가야 할 일들일 것이다.

 

임제혁 변호사
법무법인 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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