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5년간 50조 원의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도시재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도시는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모으고 그 안에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경제, 사회, 문화, 생활이 담긴 그릇이다. 서로의 다른 생각과 가치관, 아이디어, 경험이 교류하면서 도시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발명, 창조의 중심이 되어 발전해 왔다. 더 이상 도시는 한 나라의 소속이 아니며, 지리적, 국가적 경계를 넘어 세계와 교감하고 발전하고 있다.
도시의 발전 여부가 국가발전과 미래 경쟁력의 척도가 되면서, 도시를 살기 좋은 공간으로 만들려는 새로운 도시전쟁이 불붙고 있다.

이제, 글로벌 대도시들은 ‘성장관리’라는 낡은 패러다임을 벗어던지고 ‘도시경쟁력 강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건물 고도제한과 용적률, 용도제한 등 규제를 과감히 풀어 수직적인 고밀 개발을 통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있다. 그 결과 생성된 수평적 여유공간에는 공원과 다양한 문화시설 등 사람이 모이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면서 획일적이고 수평적이었던 도시공간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추세이다.

싱가포르는 유연한 도시전략으로 스마트시티로 발전하고 있는 대표사례이다. 싱가포르 도시재개발청(URA)은 난개발을 막기 위한 정책적 결단이 매우 강력하며, 싱가포르를 55개 지역으로 세분하여 각각에 대하여 수립된 개발지침을 통해 무분별한 부동산 개발을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철저한 규제 속에서도 융통성 있는 도시개발 정책을 펼쳐 총면적 692.7㎢ 규모의 작은 도시 국가 싱가포르를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라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국가의 밑바탕을 만들어 주었다.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지역은 수십 동의 초고층 빌딩 사무실 공간으로만 이루어져 쇼핑, 엔터테인먼트 시설이 부족하고 주거지와 멀리 떨어져 주말에는 고스트 타운으로 불릴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다. 하지만 최소한의 규제로 창의적인 개발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화이트 존(White Zone)과 장단기에 걸쳐 치밀하게 리뉴얼되는 도시정책에 힘입어 관광과 금융을 융합한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로 발전할 수 있었다.
향후 부동산 시장 여건, 개발 당시의 도시계획 관련 수요 등에 유연하게 대응하고자 용도를 미리 정하지 않은 화이트 존은 대략 1,300%~2,500%의 용적률과 건축고도 315m를 보장한다. 고도제한 및 용적률에서 융통성을 발휘한 결과, 마리나베이샌즈호텔과 같은 창의적인 건축물이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살고 싶은 도시 TOP3에 항상 랭크되는 밴쿠버는 어떠한가? 밴쿠버는 마천루와 자연, 그리고 인간과 첨단기술이 조화를 이루도록 계획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아부다비, 두바이 등 전세계에서 앞다퉈 벤치마킹하는 밴쿠버식 개발모델은 ‘밴쿠버리즘’으로 통용된다. 밴쿠버식 개발모델의 핵심은 조망권 보장을 위한 경관축, 주거·오피스·상가 복합형 고밀도 고층빌딩, 그리고 도시를 둘러싼 자연환경으로 압축된다. 스카이라인 규제를 탄력적으로 적용해 빌딩을 길고 늘씬하게 만들어 조망권도 함께 중요시한다.
서울을 지배하는 대도시 도심테마는 보존을 위한 성장억제지만, 밴쿠버시의 정책은 정반대이다. 오히려 도심 규제를 적극 풀고 상업용 오피스빌딩과 초고층 콘도미니엄 설립을 통해 젊은 인재와 하이테크기업들을 도심으로 유입시키고 시민들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해 냈다.
이는 밴쿠버시 공무원과 디벨로퍼들 간의 소통이 자유롭고 공무원 자체의 재량권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는 밴쿠버 도심에 더 높은 건물을 짓도록 허용하는 대신 시민들을 위한 공간을 더 내놓도록 시행자와 거래하고, 용도지역 상향을 통해 추가로 발생한 자산가치의 80% 가량을 돌려받는 등 개발이익과 공익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또한 밴쿠버 시청 자체에서 도시계획 민간 개발업자, 건축 전공 대학교수 등 약 200명의 다양한 전문인력을 보유한 점도 밴쿠버를 세계도시로 만들어 준 큰 요인이다.
이제, 빌딩만 밀집되어 있는 도심이나, 위성도시를 마구잡이로 공급하는 수평적 메가시티의 시대는 지났다. 기존 산업사회는 대량생산,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교통시스템으로 직장과 주거의 분리를 강화시켜 메가시티를 지향했다면, 4차 산업혁명은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등으로 도시를 통합시키고 있다. 공장 자동화로 생산직은 줄어들며, 산업단지와 주거단지의 구분과 경계가 없어질 것이다. 미래도시는 압축개발과 복합개발을 근간으로 대중교통 중심의 지속가능한 토지이용 패턴을 도시개발의 원칙으로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도시정책 방향은 무엇일까?

첫째, 도시경쟁력 향상을 위한 과감한 도시정책이다. 국가 경제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대도시정책을 성장관리에서 경쟁력 강화로 바꿔야 한다. 국경을 초월해 살기 좋은 장소를 찾아 떠나는 창조적 인재와 글로벌 경제를 주도하는 하이테크 기업들의 유치를 위한 밴쿠버식 개발모델, 싱가포르의 화이트 존 등과 같은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

둘째, 지속가능한 도시계획 체계 정립이 필요하다. 싱가포르는 향후 50년을 내다보고 10년마다 수정을 하는 컨셉플랜, 이를 바탕으로 향후 10년간의 법정계획인 마스터플랜을 5년마다 상황에 맞게 수정, 지역에 맞는 세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중장기 계획이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할 장·단기 계획의 연결고리가 단절되어 있고 단기적이고 수익성 위주로 개발이 이뤄지다 보니 도시계획 시스템이 단순히 토지이용 및 도시기능을 배치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정치권과 무관하게 도시계획 체계와 정책은 지속가능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셋째, 민간참여와 협력에 기초한 도시계획 체제 구축이 요구된다. 일본은 민간 개발업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효율성을 높이는 반면, 한국의 도시재생사업에는 민간사업자에 대한 지원이나 규제완화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주로 정부가 주도하면서 지자체와 연계된 개발은 자칫 소극적인 개발로 큰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민간 개발업자의 참여와 개발 아이디어가 반영된다면 기존 주민, 민간사업자, 이윤에 대한 회수로 지자체까지 모두가 윈윈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디벨로퍼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자체의 상생차원의 지원,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50조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도시재생사업이 복지적 차원에서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도시경쟁력을 높여 글로벌도시로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문주현 회장 (주)엠디엠·한국자산신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