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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추억의 걸판진 한 상(床) 한국인의 밥상

우리의 식탁. 매일 대하는 것이기에 참 익숙하다. 낯설지 않은 것은 친근하다는 것이고 우리에게 보편적인 것일 게다. 요즘 ‘셰프’라는 직업이 뜨고 인터넷에서는 ‘맛집’ 검색이 상위권에 오르며 TV 채널마다 ‘먹방’(음식방송)이 넘쳐나는 가운데, 진정 우리네의 음식에 대한 관심이 이 정도로 컸던가 놀라고 있다. 특히 호사스럽게 먹고 즐기는 것을 넘어서서, 한 가지 반찬을 놓고도 여러 잡학상식(?)을 동원하는 사람들(음식전문가)을 보노라면 한국인의 음식문화에 대하여 경이(驚異)하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

우리네의 식탁, 한국인의 밥상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어쩌면 한국인의 밥상은 ‘자연’으로 시작하고 ‘생명’으로 이어가며 ‘문화’로 꽃 피우고 있다. “자연을 가진다”는 것은 산과 바다와 강을 품는다는 것이고, “생명으로 계속된다”는 것은 먹는 사람과 먹이는 사람을 공히 이롭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로 번영한다”는 것은 손길과 정성으로 우리네의 추억과 삶 속에 함께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밥상은 음식문화라는 큰 테두리 안에 녹아들어 있고 거대한 문화 원류(原流)를 가지기에 단순한 게 아니다.


우리네 밥상을 소재로 6년 넘게 장수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말 그대로《한국인의 밥상(KBS1 방영 중)》이다. 최불암 선생이 진행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탐험하는 이 프로그램은 예능 먹방도 아니고 다큐도 아니고 르뽀도 아닌 신선한 프로그램이다. 첫 방송인 <거제도의 겨울 대구>로부터 시작해서 <남도의 진한 맛, 흑산도 홍어>를 소개하고 <봄을 돋우는 맛, 서천의 주꾸미>도 등장시킨다. 그 외에도 우리네 전통과 역사 속에서 빚어낸 발효미와 숙성미, 근대화 시대에 들어온 세련된 외래 음식들까지 소개하면서 다채로운 음식문화를 들여다본다.

한국인의 밥상, 참으로 넉넉한 밥상이다. <벌교의 꼬막>, <장흥의 삼합>, <포항의 과메기>, <울진의 문어>, <평창의 감자>, <홍천의 옥수수>, <강릉의 두부>, <옥천의 민물고기>, <태안의 꽃게>, <통영의 굴>, <부산의 복어>, <철원의 쌀> 등등의 주연·조연들은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여러 편을 보다 보면, 많은 세상 공부가 된다. 동해에는 식해문화가 서해에는 젓갈문화가 뿌리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고, 이 산하의 온갖 ‘날 것’과 ‘삭은 것’을 두루 보면서 곳곳에 놓인 맛의 곳간을 확인한다. 북쪽에는 곡식과 채소, 남쪽에는 생선과 바다풀이 주를 이루고, 산에는 뿌리와 버섯, 들에는 나물과 육류, 바다에는 생선과 조개가 넘실거린다. 이렇게 군침을 흘리며 우리 땅을 훑다 보면, 한국인의 밥상은 생식·무염의 담백미(味), 숙성·발효의 농염미(味), 육어채과(肉魚菜果)의 혼합미(味)로 꽉 채워져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또한 우리 밥상은 조화의 미(美)를 가진다. 곡물을 위주로 하면서도 산, 들, 바다, 강이 한데 어우러지는 푸지고 걸판진 ‘한 상 차림’이다.

나아가, 한국인의 밥상은 자라난 고향에 대한 ‘기억’이고 같이 살아 온 사람들에 관한 ‘추억’이기도 하다. 그것이 <한국의 맛, 종가>, <나의 쉴 곳, 어머니의 밥상>이었고 <밥상 위의 고향, 일본 오사카 재일교포의 밥상>, <가슴시린 고향의 맛, 함경도 밥상>이었으며 <농익은 인생의 맛, 김장김치, >< 서민의 애환, 순대>이기도 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는 것으로 시간을 거슬러 추억에 잠기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프루스트가 창안한 문학적인 접근(‘의식의 흐름’기법)은 신선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맛과 향기가 옛 기억을 살려내어 한 사람의 생각을 바꿔버린다는 점을 알게 해 주기에 놀랍다. 맛과 향이 인간의 무의식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힘일지도 모른다.

 

맛과 향기를 품은 우리네 밥상. 그 밥상은 한국인에게 옛 기억과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게끔 한다. 한국인의 밥상은, 이 땅의 한국인들이 잊고 지낸 오랜 기억들, 잃어버린 인연들과 그와 함께한 시간들을 찾게 해 준다. 맛과 멋을 담뿍 담은 밥상은 한국인들에게 시시때때로 자아성찰과 인간성 회복의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다.

 

유재원 변호사
●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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