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밤배를 타고 부산으로 간 적이 있다. 친절한 항해사는 우리 신혼부부에게 조타실을 구경시켜 주었다. 평범한 그 문을 열었을 때,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창문으로 검은 바다가 압도적으로 펼쳐졌다. 점점이 고깃배 불빛들이 명상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항해사는 제주~부산 간 두 개의 항로가 있으며, 기상상태 등에 따라 하나를 택한다고 했다. 미지의 어둠 속을 항해하는 배가 실은 궤도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헌법은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이탈하지 않도록 항해의 궤도를 정해 준 것이리라.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졌을 때, 항해를 이탈한 배에 탄 나의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그런 상태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실에서 탄핵심판의 국회 측 대리인 제안을 받자, 나는 헌법재판 전문변호사로서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당시 헌법규범은 헌법현실을 전혀 향도하지 못했고, 대한민국 토대의 허약성이 드러났다. 촛불집회에 모인 시민들의 인식은 정확했다. “이게 나라냐.” 당시 나의 견해도 그러했다. 즉, 대통령이 민간인 최순실에게 연설문과 외교, 안보, 국방, 인사의 국정 관여를 허용하고, 문체부 장차관 등 공무원을 최순실 라인으로 채웠으며, 국정농단을 보도하던 세계일보를 억압하였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설립하고, 재벌들에게 각종 특혜를 대가로 거액의 돈을 뜯어냈다. 대통령의 직무 방기 태도는 결국 ‘세월호 7시간’으로 연결되었다.

규범적으로, 탄핵심판 사건은 국민주권주의 및 대의민주주의 위배, 국가권력의 남용, 시장경제질서 파괴, 기업경영의 자유 침해, 언론의 자유 침해, 강요, 뇌물 등의 문제이지만, 내 견해로는 실은 돈의 문제였다. 국가 돈 빼먹기 좋은 곳이 문체부였으며, 창조, 융합, 문화, 스포츠 진흥 구호 뒤에는, 박근혜 정부 들어 문체부(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00억 원 이상 증가된 방만한 예산의 사적 이익추구 기도가 자리 잡았다. 거기에 ‘블랙리스트’라는 국가의 적나라한 국민들 차별취급과 이로써 정권 강화책이 수반되었다. 대기업 돈 빼먹기는 더 쉬운 일이었다. 사적 이익을 위해서, 청와대의 요청에 대기업들은 노예근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혜택을 기대하며 수십, 수백억 원을 지출하였다. 그 돈은 수많은 노동자들과 용역업체들의 피와 땀의 결과가 아닌가. 내가 보기에, 권력은 집중되고 남용되었으며 헌법은 실패하였다.
그런데 탄핵사건에서 법리상 명확해 보이는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위반 행위에도 불구하고, 입증은 쉽지 않았다. 방대한 검찰 수사자료가 핵심 증거였다. 피청구인 측이 전문증거라며 부동의한 상황에서, 헌법재판소가 과연 전문법칙의 예외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가 소송법적 관건이었다. 즉, 탄핵심판에서 형사소송법을 전적으로 준용할지, 헌법재판의 특수성을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인가였다.

초기 준비서면들은 이 문제에 집중되었다. 지리한 양측 공방과 재판부의 신중한 논의를 거쳐, 마침내 재판부가 ‘수사기관에서 변호사가 참여했던 조서는 증거능력을 인정한다’고 했을 때, 피청구인 측은 반발하고 우리 측도 불만이었지만, 심리절차와 심리기간에 대한 가닥이 잡혀갔다.

본안 문제에 있어서는, 형식논리를 어떻게 깰 것인가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피청구인 측은 일부 최순실의 관여가 있었지만 대통령 명의로 권한을 행사했고, 대통령이 공무원을 임면하였으며, 언론탄압의 직접 증거가 없고, 강요나 뇌물의 대가성이 없었으며, 세월호 침몰은 대통령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형식논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나는 이 문제는 ‘형식적 법치주의’가 아니라 ‘실질적 법치주의’ 실현의 관점에서 접근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결국 헌법 위반의 인정 정도를 어느 범위로 할 것인지의 문제였다. 형사법 위반은 ‘엄격한 증명’을 요하지만, 헌법 위반은 많은 경우 헌법규범의 추상성과 가치지향성 때문에 그러한 증명방식이 타당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가 지금껏 위헌결정을 해 온 것도 그러한 증명 방식이 아니었다. 우리 측은 이 사건에서 점차 헌법 위반 쪽으로 중심을 잡아가면서, 소추사실을 재편성하고 논의를 집중하였다.

마지막 허들은 ‘중대한 법 위반’ 법리였다. 대통령 탄핵은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어야 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정립된 이 법리는, 당시에는 구체적으로 적용되지 않았던 일반론, 즉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위배와 ‘국민의 신임을 배신한 정도의 위법’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 법리가 구체적으로 살아 움직여야 되는 사안이었다. 우선 이 사건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을 건드린 것으로 입증하기가 어려웠다. 접점으로 (자유)시장경제질서가 있었다. 예전 국가보안법 한정합헌결정 등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한 요소로서 시장경제질서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사건의 핵심은 ‘정경유착’(관치경제)이다. 박정희 정부 때부터 내려온 국가권력과 대기업의 부당한 공생, 상호부조 관계가 청산되지 않고 잔존한 것이 화근이었다. 세상에 민간 기업이 자율적 의사로 시장경제를 하지 않고 법률근거도 없이 국가권력에 휘둘린다면, 어떻게 자유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있나. 그 점에서 헌법재판소의 시대적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위반이 받아들여지기에 어려움이 예상되었고, 따라서 핵심은 ‘국민의 신임을 배신한 헌법위반’이었다. 대통령 하야/탄핵을 요구하는 국민여론 통계, 명백한 국가권력의 사적 추구, 국가공무원 임면의 자의성, 예산의 남용, 대통령의 부실 사과 등 자료가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이 법리에 천착하여 파면결정에 이르렀으며, 파면 효과와 대통령직을 지속시킬 이익 간의 법익형량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헌법재판 전문변호사로서 국가의 중요한 헌법재판에 관여하여, 대다수 국민들의 의지를 사법적으로 관철시킨 것은 큰 영광이었다. 나는 패소하면 변호사를 접을 생각이었다. 헌법과 국민들 볼 낯이 없을 것 같았다. 국회 측 변호인들은 사무실 유지비도 못 되는 수임료만 받고, 성공보수도 없이, 밤낮없이 최선을 다하였다. 국민들이 나라의 주인의식을 확고히 하는 데, 국회 측 변호사들이 상당히 기여한 것이라 믿는다. 아쉬운 것은, 재판관 퇴임과 맞물린 소송지연책에 심리기간이 늘어난 것이다. 한쪽의 공정성 보장이 다른 쪽에게 불공정을 초래할 수 있다. 심리가 더 짧았으면 정국안정에 더 도움이 되고 희생자도 없었을 것이다. 한편 언론의 자유 침해와 공무원 임면의 자의성 부분이 배척된 것이 아쉽다. 재판관들이 만장일치를 신속하게 도출하면서 생긴 일이라고 보아 위안을 삼는다. 언론이 눈을 부릅뜨고 살아있어야 하고, 공무원이 특정 정권이 아니라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라야 비로소 국가의 위상이 바로 설 것이다. 이번 대통령 탄핵이 ‘법치주의를 통한 민주주의’의 실현으로서 대한민국을 위대한 국가로 만들 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명웅 변호사 ●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