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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링 소령의 질문

해롤드 헤링(Harold Hering)이라는 미국 공군 장교가 있었다. 그는 20년 이상 공군에서 복무하는 동안 베트남전에서 헬기를 조종한 베테랑이었고, 성실한 군복무 덕분에 훈장도 수상했다. 미국 본토의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핵미사일 부대의 일원으로 근무하던 그는 중령으로의 진급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1973년 말경 어느 날, 핵미사일 발사 훈련 중 그는 상관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대통령께서 정상적인 정신 상태로 핵미사일 발사 명령을 내리셨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습니까?”

이 순진한 질문 하나가 그의 군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헤링이 질문을 던질 당시의 미국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 당시 닉슨은 워터게이트 스캔들의 여파로 인해 정치적 공세에 시달리고 있었고, 게다가 과도한 음주벽으로 인해 이성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닉슨은 한 연회장에서 “내가 이 방에서 나간 뒤 25분 안에 7천만 명이 죽을 수 있다”라는 섬뜩한 말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워터게이트 스캔들 및 은폐 시도에 닉슨 본인이 개입한 정황이 명백해지는 1974년에 이르면 닉슨의 정신상태는 더더욱 불안정해졌다. 닉슨이 비이성적인 상태에서 자칫 핵무기를 사용할 것을 우려한 당시 국방장관인 제임스 슐레징거(James A. Schlesinger)는 대통령이 ‘핵무기의 사용을 포함하는’ 긴급 명령을 하달하는 경우 이를 실행하기 전에 먼저 국방장관 또는 국무장관인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를 거치라고 군대에 명령한 바 있었다.

 

 

 

헤링 소령이 복무할 당시 핵미사일 발사 체계는 발사명령을 내린 자의 정체 파악(내게 이 명령을 내린 자가 대통령이 맞는가?) 위주로 진행되고 있었으나, 헤링 소령의 질문은 그러한 수준을 넘는 것이었다. 그의 질문은 단순히 핵미사일의 발사 명령이 적법한 통수권자로부터 왔는지 여부를 넘어, 과연 그와 같은 명령이 적법하고 정당한지 여부를 묻는 것이었다. 핵무기의 사용은 곧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킬 것임이 분명한데, 과연 그러한 엄중한 명령을 대통령과 각료들이 심사숙고 끝에 일체의 사정을 고려하여 결정한 것인지 아닌지를 묻는 도덕적인 질문이었다.
공군의 핵미사일 발사 시스템의 치명적인 허점을 밝힌 헤링은 직위해제된 후 “장교로서 요구되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강제 전역당했다. 헤링은 전역 결정에 불복하였으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역조치를 무를 수 없었다. 소청심사위원회에서 공군은 헤링의 질문에 대해서 “핵미사일 발사 명령이 적법한지 여부는 귀관이 발사장교로서 알아야 할 범위의 사항이 아니다”라고 답했고, 결국 헤링은 공군을 떠나야만 했다.
44년 전 헤링 소령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핵무기의 위력은 더더욱 강력해졌고, 핵무기는 파키스탄과 북한처럼 정정이 불안정한 제3세계 국가들에게까지 번져나갔다. 그리고 심지어 핵무기를 보유한 선진국 중 최강국인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지구 기후변화가 ‘미국의 제조업을 약화시키려는 중국의 발명’이며, 소아마비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했던 졸부는 25분 안에 7천만 명(혹은 그 이상)을 살상할 수 있는 힘을 얻었고, 마치 그 힘을 얼마든지 사용하겠다는 듯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해 “화염과 분노”를 보여줄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북한은 미국 영토인 괌을 향해 핵미사일을 쏘겠다고 맞서고 있다.

핵무기가 전세계로 퍼져나가던 냉전 기간 동안 지구를 멸망시킬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는, 최소한 핵무기를 보유했던 강대국들의 지도자들은 이미 2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통해 핵무기 사용의 궤멸적인 결과를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핵무기의 사용만큼은 예방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권력욕의 광기에 휩싸였던 닉슨도 그 선을 넘지는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지구를 수십 번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의 무기를 보유한 소수의 사람들의 지혜와 도덕심에 우리의 생존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이 상황에도 우리는 그들이 부디 평정심을 유지하길, 그들의 정신이 온전하길 기도하며 그들의 자비 아래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오직 전멸의 공포로만 유지되는 광기이며, 생존과 번영을 희망하는 모든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윤태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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