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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도 공유할 수 있을까요?

 

새로 받은 형사사건의 수사기록은 10권이 넘는다. 깨알같이 적힌 증거목록은 20여 페이지나 된다. 방대한 증거만 보더라도 빈틈없이 수사가 이루어졌을 것이라 지레짐작하지만, 야속하게도 의뢰인은 공소사실을 부인한다. 증거에 대한 인부를 밝혀야 하는데, 증거목록을 모두 타이핑해야 하나... 다른 방법이 없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포기하고, 일일이 증거목록을 입력하니 목덜미는 뻐근하고 눈은 침침해진다.

수사기록 중 의견서에 언급할 만한 내용이 떠오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처 메모까지는 하지 못했다. 증거목록을 토대로 기억을 더듬어 필요한 부분을 뒤져보지만 잘 찾아지지 않는다. 할 수 없다. 다시 기록을 처음부터 볼 수밖에 없다. 그나마 위안을 삼는 것은 회독수가 높아질수록 가독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언급한 사례들은 필자가 소송을 수행하면서 겪었던 일들이다. 만약 필자가 제출된 서류들의(출력본을 그대로 스캔한 파일이 아니라) 파일 원본을 가지고 있었다면, 손쉽게 복사하고 몇 개의 검색어로 그 내용을 쉽게 찾으면 될 뿐, 문서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재생산하는 번거로움은 덜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전자소송이 어느 정도 정착된 민사소송의 경우는 그나마 덜하지만, PDF 파일로 제출된 스캔본만으로는 그 내용을 검색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OCR(Optical Character Reader) 기능을 활용하여 출력물의 내용을 검색할 수 있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운 좋게 문서의 인쇄 상태가 좋은 경우에만 그러할 뿐, 생각보다는 판독 기능이 좋지 않다. 최근 IBM사의 인공지능 컴퓨터인 WATSON도 한국어로 자연어를 처리하는 서비스를 개시하였다고 하는데, 실제 소송 과정에 도입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방법은 있다. 문서를 제출한 측에게 원본 파일을 달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연락해서 파일 좀 보내 달라고 요청한다면... 쑥스러운 것은 둘째 치더라도 여간한 친분이 있지 않은 이상 넘겨주지 않을 것 같다. 입장을 바꾸어, 필자가 그러한 요청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는, 상대방 좋은 일을 했다가는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가 번거로운 작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합의를 통해 소송에서 자연스럽게 파일까지 공유하는 문화가 생긴다면, 타이핑과 같은 소모적인 일에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고, 필요한 쟁점에 보다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형사사건 조서 등의 원본 파일이 공유된다면 피고인의 실질적인 방어권이 보장될 수 있다. 수십 권의 기록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내용을 쉽게 검색할 수 있다면 ‘공소사실을 부인할 권리’를 포기할 일도 줄어들 것이다. 현재 형사소송의 전자소송 도입에 대한 논의는 있지만, 답보상태인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 형사소송(민사소송도 마찬가지이다)에 전자소송이 도입된다면, 조서 등 파일까지 공유될 수 있는 수준까지 진행되었으면 한다. 또한 그전에라도 필요한 경우 상대방에게 제출된 문서 파일의 복사본 정도는 어렵지 않게 요청할 수 있는 수준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형성되었으면 한다.

 

김용우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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