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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너 제목이 ‘시인의 마음’이다. 내가 요즘 짬짬이 마음을 두는 곳도 하필이면 ‘마음’이다. 마음이란 건 있다. 분명히 있는데 붙잡을 수가 없다. 붙잡아서 어디다가 보기 좋게 세워둘 수도 없다. 마음은 동상이 아니니까. 마음을 모아서 견고한 마음으로 세워놓은 동상도 결국에는 동상이다. 세워놓은 동상. 무너지는 마음. 무너지는 마음처럼 쓰러지는 동상은 봤어도 마음이 무너지거나 쓰러지는 것은 여태 못 봤다. 볼 수가 없는 것. 그것이 마음인가? 그것이 마음이라면 마음은 어떻게 있는가? 분명히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은 누가 했는가? 누구라도 했을 그 말을 주워 담아서 잔뜩 쌓아둔 곳에도 마음은 없다. 마음은 형상이 없다. 색깔도 없다. 색깔이 있다면 그림이라도 그렸을 것이다. 형상을 지운 색으로 마음을 표현했을 것이다. 반세기 전 마크 로스코(Mark Rothko)가 이미 했던 것처럼.


마음은 실체가 없다. ‘그것’이 실체가 없는 것처럼. 마음은 증거가 없다. 그것이 그것에 관한 모든 증언을 허구로 만들어버리는 것처럼. 마음은 진리가 안 된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더라도 미지의 여분을 남기는 그것처럼. 여분의 미지를 각오할 수밖에 없는 그것에 대한 탐구는 그리하여 마음대로 그려내고 싶은 대상이자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는 또 하나의 주체다. 그것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내 마음대로 고정되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것 마음대로 있는 것 같다. 그것 마음대로 세상을 활보하는 것 같다. 그것 마음대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그 무엇을 다시 마음이라고 부르면서 하루가 간다.

어제는 일찍 잠들었다. 마음을 생각하다가. 오늘은 늦게 일어났다. 마음을 생각하면서. 저 또한 증명할 길 없는 마음의 말이지만, 잠을 깨면서 생각하는 것이 또 마음이다. 마음을 생각하고 있고 마음이 생각하고 있다. 마음을 생각하는 마음. 마음이 생각하는 마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중단하지만 마음은 중단되지 않는다. 마음은 다른 마음으로 기똥차게 몸을 바꾸면서 다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마음은 죽지 않는다. 마음은 사라지지도 않는다. 어딘가에 있다. 다만 마음대로 불러낼 수 없을 뿐. 제 마음대로 흘러나올 뿐. 마음은 마음이 주인인데, 왜 형상도 색깔도 없는 그것을 또 붙잡고 늘어지는 내가 있을까? 내가 마음일까? 나는 몸이기도 한데, 마음과는 얼마나 다르고 또 같은지 생각해볼 여지도 없이 마음은 다음 장면을 궁리한다. 다음 문장을 고심한다.


나는 듣고만 있다. 오직 신의 말을 따르려고 했던 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는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하는 사람. 그가 시인이라면 시인의 마음은 온통 타인의 목소리로 흘러넘치는 공간이겠지만, 그 공간이 결국엔 마음이라면, 누군가의 마음이라면 마음은 비어 있는 무엇이자 꽉 차 있는 무엇으로 나를 움직이는 무엇일 것이다. 마음은 무엇이다. 마음은 그것이고 마음은 그래서 이 공간에 없다. 저 공간에도 없다. 마음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공간이므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마음인지 마음은 모른다. 공간도 모른다. 당신은 아는가? 나는 모른다. 그 마음의 현재를. 다음을. 앞으로도 모르는 채로 마음은 글을 쓴다. 이 글처럼 문득 마치는 때가 올 것이다.

                                                                                           

 

 

 

 

 

김언 시인
● 1998년 『시와사상』 신인상 등단.
시집 『숨쉬는 무덤』, 『거인』, 『소설을 쓰자』,
『모두가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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