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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死線)에서, 그들은 돌아왔을까. <백학ЖΥΡΑΒЛИ>

눈발이 내리고 있었다. 모스크바 국립도서관 앞 비둘기들은 분주히 날아다녔다. 매캐한 매연 탓인지 날씨는 흐렸다. 비둘기들은 도스토옙스키의 머리 위에도 올라와 있었다. 가난한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레닌이나 뾰뜨르 대제의 당당한 모습과는 달리 어깨를 굽히고 팔을 다소곳이 내린 채 아래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그는 인간적이지 않은 사상을 싫어했다. 그것이 제정 러시아이든 소비에트 사회주의라고 하더라도 그랬다.


인본주의자 또는 이상주의자인 도스토옙스키. 그의 인생은 하나로 정의하기에 힘들다. 반체제인사, 사형수, 유배생활, 강제징집(군복무), 간질·발작, 도박력, 상처(喪妻), 막대한 빚과 지독한 가난... 이런 것들은 그의 삶에 무수히 펼쳐져 있지만, 문학에는 그런 어둠이 드물다. 사선에서 구사일생했던 도스토옙스키는 여러 작품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참으로 애틋하게 그려내고자 했다. 비루한 인간이 막심한 후회를 거듭하고 그 인생이 참담하게 구겨지더라도, 작품 속의 인물들은 금옥(金玉)의 영롱한 양심 (良心)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처럼, 도스토옙스키의 사람과 삶에 대한 관심이야 말로 러시아 작가들 어느 누구도 아닌 ‘그’를 도서관 앞자리에 모셔두기에 충분한 것이었을까.


도스토옙스키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설경 속에서, 익숙한 노래자락이 들린다. ‘음흠흠흐음~~’으로 시작하는 러시아(체첸) 민요, <백학(ЖΥΡΑΒЛИ 쥬라블리)>이다. 백학은 전쟁 이후 태어난 노래다. 혁명 이후 전쟁이 두 번이나 닥쳤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으로 소비에트와 그 주변 나라사람들 1천만 명이 죽거나 다쳤다. 한때 인류의 이상향을 꿈꾸었던 곳은 사라졌다. 비옥한 땅들은 유린당하고 공동체는 흐지부지 되었다. 불쌍한 체첸의 병사들은 조국과 혁명을 위하여 전장에 나갔다가 결국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노래의 이야기처럼, ‘그들은 백학이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백학이 되어 돌아왔다’고 한다.

사선에서 돌아온 어느 인본주의자와 달리, 무명의 용사들은 공동체의 부름을 받아 무작정 전선에 섰고 불꽃과 이슬 속으로 산화했다. 이름난 전쟁터인 쿠르스크에서든 스탈린그라드에서든 그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수없이 사라진 그들을 위해, 조국은 무엇을 했는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서라고 청년들을 전장으로 내몰던 지도자들은 무얼 했는가. 나중에 구국의 영웅으로서 무공 훈장이라도 받게 해 주었을까. 그런 반짝이는 것들로 조국전쟁에 참여한 전사의 삶이 아름다웠다고 위로해 줄 수 있었을까.


어쩌면 체첸인들이 읊조리는 것처럼, 영문 모를 전쟁에 가서 혼백이 승화한 전사들은 우리 곁에 있다. 피로 물든 들녘에서 돌아오지 않은 육신들일지라도, 그들의 숭고한 혼은 ‘백학이 되어’ 남은 자들의 곁을 맴돌고 있다. 죽음의 선(死線)에서 살아오고자 했던 희망을 누군가가 계속 기억해 주고 있기에.

백학

Мне кажется порою что солдаты,
나는 가끔 병사들을 생각하지
С кровавых не пришедшие полей,
피로 물든 들녘에서 돌아오지 않는 병사들이
Не в землю нашу полегли когда- то,
잠시 고향 땅에 누워보지도 못하고
А провратилисъ в белых журавлей.
백학으로 변해버린 듯하여
Они до сей поры с времён тех далъних
그들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날아만 갔어
Летят и подают нам голоса.
그리고 우리를 불렀지
Не потому лъ так часто и печалъно
왜, 우리는 자주 슬픔에 잠긴 채
Мы замолкаем, глядя в небеса.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잃어야 하는지?
Летит, летит по небу клин усталый,
날아가네, 날아가네 저 하늘의 지친 백학의 무리들
Летит в тумане на исходе дня.
날아가네 저무는 하루의 안개 속을
И в том строю естъ промежуток малый,
무리 지은 대오의 그 조그만 틈 사이
Бытъ может, это место для меня
그 자리가 혹시 내 자리는 아닐는지
Настанет денъ,и с журавлиной стаей
그날이 오면 백학들과 함께
Я поплыву в такой же сизой мгле,
나는 회청색의 어스름 속을 끝없이 날아가리
Из- под небес поптичъи окликая
대지에 남겨둔 그대들의 이름자를
Всех вас,кого оставил на земле.
천상 아래 새처럼 목 놓아 부르면서

 

 

 

 

 

 

 

 

 

 

 

 

유재원 변호사
●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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