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영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는 2007년 코엔 형제가 감독하고 토미 리 존스, 하비 에르 바르뎀, 조시 브롤린 등이 공동 주연한 미국의 범죄 스릴러 영화이다. 이 영화는 예측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사이코 살인마 안톤 쉬거의 광기와 우연히 주은 돈을 차지하려는 평범한 용접공 모스와 멕시코 갱단 사이의 갈등, 그들 을 저지하려는 보안관 ‘노인’의 노력이 뒤섞이며 진행된다. 오래간만에 본 스릴러 영화로서 가히 만점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는 중간 중간 던져지는 너무나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들에 있다. 다만 스릴을 즐기기에도 바빠 한 번에 하나하나 눈담아 보지 못 하는 한계가 있어 두 번은 보아야 하는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를 다 본 후에는 주연 배우가 남긴 말들이 흐릿하게 무의식 속에 남아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게 해주었는데 이는 이 영화를 얼마 후 다시 한 번 더 보게끔 하였다. 


스릴러 소설가의 대부인 코맥 매카시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1980년대 서부 텍사스 사막 지대를 배경으로 하여 큰 행운을 손에 넣은 어느 평범한 남자와 그를 죽이러 쫓아다니는 자객, 그리고 평범한 지역 보안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 제목은 아일랜드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에서 따온 구절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으로,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즉 ‘노인을 돌봐주지 않는 나라’가 원래 뜻에 가깝다. 영화 제목처럼 번역되려면 That is가 아니라 There’s 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소설명을 ‘노인을 위한 나 라가 아니다’라고 번역하면 주어가 없기 때문에 뭔가 이상한 느낌을 줄 수 있으므로 나름 영화제목으로는 적절한 번역이라고 하겠다. 이 영화 제목에서의 ‘노인’이란 ‘오래된 경륜과 지혜를 가진 평범한 현자’이다. 만약 노인의 경험과 지혜대로 예측가능하게 흘러가는 사회라면 그 곳에서 노인들은 대접받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지혜로운 노인들만 있지 않고, 노인이 우대받지도 않는다. 우연을 통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고, 누군가 선한 의도로 행한 일이 곧 악몽이 되어 찾아오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매일 일어나는 곳이 우리가 사는 세상인 것이다. 이러한 부조리한 세상의 이치를 매우 담담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영화 줄거리는 이렇다. 황량하고 무질서한 1980 년 6월의 서부 텍사스. 에드 톰 벨(토미 리 존스 역)은 할아 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자신이 보안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그곳에서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폭력 사태를 보며 한 탄스러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사막 한 가운데서 사냥을 즐기던 용접공 르웰린 모스(조시 브롤린 분)가 총격전이 벌어진 듯 출혈이 낭자한 사건 현장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모스는 물 한 모금을 갈구하는 단 한 명의 생존자를 외면한 채 떠나다가 우연히 이백만 달러가 들어있는 가방을 발견 한다. 횡재를 했지만 물을 달라는 요구를 거절한 게 내심 꺼림칙했던 모스는 새벽녘에 현장을 다시 방문하게 되고, 때 마침 마주친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여기에 이 백만 달러가 든 가방을 찾도록 고용된 싸이코 살인마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분)와 보안관 에드 톰 벨(토미 리 존 스 분)이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혼돈과 폭력의 결말로 치달아 간다.


이 영화는 당시 한국에서도 상당히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영화인 데 반해 그 내용 자체는 상당히 어려운 영 화다. 긴장감 넘치는 연출과 안톤 쉬거라는 살인마의 카리스마가 이러한 어려운 내용을 넘어선 흥행을 가능케 한 것. 더불어 우리말로도 더빙 방영한 바 있다. 영화는 시종일관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좋은 놈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메마르고 건조한 배경에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음악을 제외 하면 배경음도 전혀 삽입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상당히 건조 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특유의 적적함으로 인해 사물을 만지고 흙길에서 걷는 장면 등은 마치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줄여서 ASMR은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후각적, 혹은 인지적 자극에 반응하여 나타나는, 형언하기 어려운 심리적 안정감이나 쾌감 따위의 감각적 경험을 일컫는 말이다)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실제로 유튜브에 총기 소리만 음소거한 여러 대화 장면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ASMR’이란 제목으로 올린 영상이 꽤 있다. ASMattR란 유튜버는 하비에르 바르뎀이 연기한 중저음 안톤 쉬거가 주가 되는 장면인 그 유명한 슈퍼씬의 대화를 본인이 재현해 내기도 했다. 확실히 메마른 분위기를 주긴 하고, 잠이 올 것 같기도 한 분위기지만 이 특유의 분위기에 녹아들어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영화는 결말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주인공 보 안관 에드 톰 벨(토미 리 존스 분)이자 이 영화 속 노인에 해 당하는 두 가지 꿈 얘기를 하며 막을 내린다. “두 가지 꿈을 꿨어. 첫 번째는 나보다 어린 아버지가 마을에서 나에게 큰 돈을 주셨어. 하지만 잃어버렸지”  꿈속에서 운에 의해 얻은 것을 운에 의해 잃은 노인이다. “두 번째는 옛날로 돌아간 거야. 밤에 말을 타고 산길을 달리고 있었어. 좁은 오솔길 말이야. 춥고 땅엔 눈까지 쌓여있었는데 아버지가 말을 타고 날 그냥 앞질러 가시는 거야. 담요를 두른 채 머릴 숙이 고 계셨었지. 지나가실 때 횃불 드신 걸 봤지. 추운 곳 어딘가에서 횃불을 밝히고 계셨을 거야. 내가 그곳에 도달했을 때 날 비춰주시려고....” 노인이 아버지가 비췄던 자리에 아 버지의 나이가 되어서 다시 섰을 때 남아있던 것은 무력함 이었다. 노인은 누군가에게는 절망적일 수도 있는 이 두 가 지 꿈이 즐거웠다고 말한다. 첫 번째 꿈은 벨이 아버지가 준 돈을 잃어버린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이 세상에 돈 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으니 돈 같은 건 잊고 그것을 찾으라는 의미일 것이다. 돈에 대한 코맥 매카시의 부정적 태도는 이 소설 전반에 이를 뿐만 아니라 최근작인 <카운슬러>에 까지 이어진다. 코맥 매카시는 이 나라(미국)의 모든 문제가 돈에 대한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현실에서 큰 행운만을 좇지 않았기에 꿈속에서도 운에 기대지 않았고, 꿈에서 깼을 때 그는 무력했지만 즐거웠다. 무력한 사람, 야망이 없는 사람을 위한 나라는 없는 현재를 살아가는 노인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언제나 정직하고 올바르게 산다. 그들은 눈보라를 뚫고 어둠을 넘어 얼음 위에 불을 피우는 사람들이다. 영화 속 노쇠한 보안관 벨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벨 전에는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그랬다. 벨은 언젠가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가 그 불을 다시 뿔피리에 담아야 할 것이다. 그때는 벨의 차례이자 우리의 차례이다. 우리는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작은 불을 가슴에 품고 말을 달리며 인생의 종착점을 향해 가는 것이다.

 

 

 

 

 

 

성중탁 교수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성중탁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 글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