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에 보았던 영화 ‘1987’의 뜨거운 메시지는 아직도 진하게 남아 있다. ‘1987’은 6월 민주항쟁을 촉발시킨,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과 ‘이한열 최루탄 피격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깨어 있는 의식으로 용기를 낸 인물들의 진심이 이어져 세상을 바꾼 결말이 엔딩 크레딧과 함께 잔잔한 울림을 주었다.

영화의 여운 덕에 서점에서 ‘1987 이한열’이란 책을 쥐어들고 따라간 그의 마지막은 영화가 못다 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책은 이한열기념사업회에서 6월 항쟁 30주년을 맞아 이한열의 삶과 죽음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한 결과물이다. 책의 저자는 이한열이 쓰러진 시위 현장에 서 있었던 인연으로 이한열기념사업회 일을 하고 있으며,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출신답게 당시 이한열에 대한 증언 및 기록들을 간결하게 정리하여 한 권의 분량으로 집필하였다.

특히 이한열이 시위에 참여하게 된 배경에서부터 그의 시신이 광주 5.18묘역에 안장될 때까지의 과정이 스토리 라인으로 몰입도 있게 펼쳐지며, 관련 사료와 시위 용어 설명도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어 이해를 더한다. 나는 느린 호흡으로 이 책을 찬찬히 음미하면서 이한열의 의미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곱씹어 보았다.

소설가 김영하는 이한열을 추억하는 서문에서 ‘모든 인간은 이미 죽은 누군가를 대신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 썼다. 저자 김정희는 ‘그가 없었다 해도 국민들은 승리했을지 모르지만 그가 있었기에 국민들의 눈물은 더 뜨거워졌고, 분노는 더 높이 치솟았고, 결기는 더 단단해졌다’고 평한다.

나는 결국 그가 1987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를 통해 1987을 기억할 수 있다. 그의 희생은 동시대의 혼을 모아 변화를 선물했기 때문이다. 그는 죽고 우리는 살아가지만 역사의 변곡점이 오면 그의 혼은 우리를 불러일으킨다. 그가 우리를 대신해서 죽었기 때문이다.

그의 희생이 헛되지 않은 이유다.

모두가 뜨거웠던 그 해 ‘1987’의 민주화 열망은 30년 뒤인 ‘2017’에 탄핵 촛불로 재점화되었다. 1987의 유전자를 이어 나간 국민들은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2017 현재에 다시 모였던 것이다. 2017 촛불 혁명은 독재자의 마지못한 결단과 수용이 아닌 주권자의 요구와 법치에 의해 1987헌법을 제대로 구현해 냈다는 점에서 '현대적 의미의 헌법'의 시초라 할 만하다.

이를 통해 우리 국민은,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최단기간 내에 산업화를 일궈낸 것처럼 실질적 민주화의 출발점도 더 빨리 앞당길 수 있었다.
역사는 과거에 머무르거나 미래를 앞서가지 못 한다. 다만 미래를 꿈꾸는 현재의 사람에게 과거를 일깨워 줄 뿐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래서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를 굴러가고 있나 보다.

신성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