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석유가 아닌 데이터의 시대다. 국가, 공공단체, 기업 등은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를 분석·활용해서 우리 생활과 산업전반에 커다란 영향력을 갖는 각종 기기, 서비스, 정책 등을 개발하고 결정하고 있다. 이처럼 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세계 각국은 빅데이터, AI 등 첨단기술기반의 지능정보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개인정보보호 규제혁신을 최우선 국가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각 분야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해서,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1995년),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2001년), 신용정보의이용및보호에관한법률(1995년), 위치정보의보호및이용등에관한법률(2005년)과 조세, 교육, 의료관련법 등에서 나누어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1. 9. 30.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되었고 그 시행에 맞추어 법체계적 정합성이 미흡한 관련 개별법에 대한 정비가 함께 이루어져야 했으나,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만을 폐지한 채 부처 간 이기주의와 정치적 타협으로 개인정보보호법과 중복되거나 모순되는 개인정보보호관련 조항들이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등 기존 법률에 상당수 그대로 남게 되었다. 나아가 이들 개별법은 개인정보보호법의 제정 이후에도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규정을 더 추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현안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개인건강정보보호법(2008년), 개인영상정보법(2017년)등과 같은 특별법까지도 계속 제정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새로운 법령을 계속 만들기만 하고 시대와 상황에 맞지 않는 법령을 폐지하거나 법체계를 개선하는 데 소홀히 하게 되면, 국민들은 어떠한 법령이 적용되는지, 어느 기관의 규제와 어느 정도의 제재를 받게 되는지, 어떤 절차에 의해 피해의 구제를 받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해 파악하기 어렵게 된다. 이러한 개별분야의 특수성을 넘어선 중복 및 유사조항이 다수 포함된 개별법의 남용과 특별법의 증가 움직임은 적용대상 간의 형평성의 문제를 야기하고 국민의 법 이해도를 저하시키며 법체계적 정합성을 흐트러뜨려 국민의 법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고 불신이 초래될 뿐 아니라 법체계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할 우려가 있고, 집행 및 감독기능에 있어서도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행정안전부 등으로 분산되어 수범자인 국민과 기업에게 혼란과 피해를 주고 있다.
이로 인한 폐해가 EU의 개인정보보호 적정성 평가를 앞두고 여실히 드러났는데, EU는 2018. 8. GDPR(개인정보보호규정)의 시행을 앞두고 우리나라에 대한 적정성 평가를 추진하면서 행정안전부에 대해서는 정부부처 조직이므로 독립성이 결격되었다는 이유로,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대해서는 개인정보보호기관으로서 직권조사권이나 제재권 등의 집행권한이 미비되었다는 이유로 2016. 10. 우리나라에 대해 부적격 통보를 하였다. 그러자 방송통신위원회가 나서서 단독으로 EU적정성 평가를 ‘전체 적정성 평가’가 아닌 온라인 대상의 정보통신망법 위주의 ‘부분 적정성 평가’를 추진하려고 하였고 이에 대해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2017. 11. 방송통신위원회 단독의 이러한 업무추진을 중단하고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전체 적정성’ 결정 추진에 협조할 것을 권고하는 의결을 하여 개인정보에 관한 대외적인 교섭창구도 난립한 상태이다.
따라서 관련기관, 학계, 실무계를 망라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TF’를 구성하여 금융, 온라인기업, 의료, 교육, 통계정보 등 영역별로 법체계적인 면밀한 검토를 거쳐 통합된 개인정보보호법을 마련하고, 국제표준에 부합하는 통합전담기관을 마련해야 빅데이터 시대에 대한민국의 경제 및 정보주권을 제대로 수호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안병희 변호사
●법무법인 한중